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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조카와 슈퍼에 갔다가 길에 떨어진 지갑을 보았다. 순간 난 주변을 둘러봤다. 조카가 아이스크림 봉지를 뜯는 사이 나는 얼른 지갑을 주었다. 집으로 돌아와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재빨리 지갑을 열었다. 지갑엔 현금과 수표가 꽤 많이 들어있었고 백화점 상품권과 신용 카드도 있었다. ‘수표는 쓰지 말고 카드는 가위로 다 없애는거야, 그리고 상품권으로 백화점에 가서 사고싶은 걸 살까….’ 갖가지 유혹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그러나 왠지 손이 떨렸다. 순간의 선택으로 평생 죄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선 지갑이 떨어진 주변에 주·정차 위반 카메라가 있었던 것 같아 불안했다. 한편으로는 ‘아냐, 이건 열심히 일하는 나에게 하나님이 준 보너스가 분명해’라는 자기변명도 해보았다. 내 돈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돈을 쓰는 나와, 주인에게 지갑을 돌려주고 후회하는 내가 동시에 떠올랐다. 지갑을 다시 열어 보니 여자아이의 사진과 주소가 적힌 메모지가 보였다. 우리 집 옆 단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었다. 휴대 전화를 만지다 놓기를 여러 번, 결국 아파트 경비실에 전화해 지갑 주인에게 연락해 달라고 부탁했다. 다음 날 아침에 찾아온 아주머니 말을 듣고서야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아이가 아파 병원에 있어 늦게 연락이 되었네요. 급하게 병원 가느라 지갑이 길가에 떨어졌는지도 몰랐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아주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몇 번을 고개를 숙였다. 돈이 많이 들어있어서 부자일 것이라는 생각했는데, 그분은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돈은 바로 아이의 병원비였던 것이다. 나는 얼른 지갑을 건네며 어서 병원을 가보시라고 했다. 그러나 그분은 얼마간 사례를 해야 한다며 지갑을 열었다. 나는 오히려 빨리 주인을 찾게 돼서 정말 다행이라고 떠밀다시피 그분을 보냈다. 연신 고개를 숙이며 떠나는 아주머니를 보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마터면 돌이킬 수 없는 한을 죄를 범할 뻔하지 않았는가. 이튿날 그분은 식용유 세트를 사들고 와서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나는 식구들에게 고해성사를 한 뒤, 보답으로 받은 식용유로 부침개를 부쳐 먹으며 ‘조금 먹고 착하게 마음 편하게 사는 게 제일이야’ 하고 생각하며 배를 두드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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