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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끝날 무렵이었다. 갑자기 하늘이 어둑해지고 구름에서 소리가 들리는 듯 하더니 곧 비가 쏟아졌다. 나는 교실문 앞에 서서 쏟아지는 빗줄기만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엄마가 우산을 가지고 마중을 오셨겠지만, 1년 전 갑작스런 사고로 엄마 아빠가 한꺼번에 돌아가신 후 내게 우산을 가져다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상한 시골 외할머니댁으로 이사와 읍내에 있는 중학교를 다닌지 1년. 그런대로 명랑하게 잘 지내고 있지만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슬프고 외로운 마음이 들어 자꾸만 목이 메여왔다. 그러나 다시는 울지말자고 맹세를 했기에 애써 마음을 추스르고 있는데 짝꿍인 영희가 불쑥 우산을 내밀었다 "우산 없구나, 같이 쓰자. 우산속 연인처럼.” 영희가 방긋 웃으며 환한 얼굴로 바라보는 바람에 마음이 누그러진 나는 버스정류장까지 정답게 함께 걸었다. 그러나 친구 덕에 버스탈 때까지는 문제가 없었지만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비는 억수같이 쏟아졌다. 얼른 정류장에 뛰어들어 비를 피하고 있는데 멀리서 남동생이 우산을 든 채 헐레벌떡 뛰어오는 게 아닌가. 수업이 일찍 끝난 동생이 비를 흠뻑 맞고 돌아와선 하나뿐인 우산을 들고 나를 마중 나온 것이다. 얇은 우산하나로 비를 피하며 집까지 걷고 있는데 빗살이 거세져 둘 다 한쪽이 젖고있었다. 그러나 난 동생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써 명랑한 목소리로 “야 비가 오니까 들판이 더 멋지게 보인다야”하며 학교에서 얻은 재미있는 유머를 동생에게 들려주며 함께 웃었다. 그런데 문제는 개울 앞에서였다. 비 때문에 물이 불어나 징검다리가 묻혀버린 것이다. 교복을 입은데다 하나뿐인 구두가 맘에 걸려 난감하게 서 있는 내게 동생이 갑자기 등을 내밀었다. "누나, 업혀!" “어?…." 동생 등에 업히기가 조금은 쑥스러워 그냥 멀뚱이 바라보고 있는데, “누나, 어서 업혀 누나 구두젖으면 안 되잖아. 내가 누나 정도는 업는다 뭐." 하며 어른처럼 등을 들이미는 것이 아닌가. 나는 어떨결에 동생등에 업혔다. 나보다 덩치가 적은 동생은 가끔씩 멈칫하고 서서 숨을 고르고는 가만가만히 개울을 건넜다. 거칠어지는 물살 때문에 조마조마해진 나는 발이 물에 닿아 구두라도 벗겨질까봐 간을 조리며 동생등에 꼬옥 매달려있었다. 이윽고 우린 개울을 건넜고, 녀석은 큰 숨을 몰아쉬느라 우산도 팽개친 채 비를 흠뻑 맞고 서 있었다. “야 너 다컸다야. 누나를 업고다니고”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동생의 등을 두드리자 녀석은 “그럼 내가 누군데”하며 어깨를 으쓱하며 앞장서 걸었다. 뒤에서 동생의 모습을 바라보니 어느새 다 자란 것 같아 든든하기도 했지만 이제 중학교 1학년인 어린 녀석이 부모도 없이 시골에서 자라고 있는 모습이 안스러워 가슴이 저려왔다. 그날 밤 녀석은 일찌감치 잠이 들었다. 피곤했던지 이불은 다 차버리고 곯아떨어져 있었다. ‘얼마나 피곤했으면…’하고 양말을 벗겨주는데 발바닥이 끍혀서 군데군데 피멍이 들어있는 게 아닌가. 그러고보니 오늘 동생은 슬리퍼를 신고 있었던 것이다. 개울을 건너다 멈칫 서서 내게 웃어보였던 녀석은 그때 애써 아픔을 감추려고 서있었던 것이다. 제 발에 피멍 맺히는 줄도 모르고 누나 구두걱정을 해 준 착한 내동생. 나는 쏟아지려는 눈물을 삼키며 잠든 동생의 발에 살살 안티프라민을 발라주었다. 그리고 동생이 클 때까지 꼭 잘 보살펴 훌륭하게 성장시키겠다고 하늘에 계신 부모님께 기도드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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