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학교육에 대한 열기는 언제나 식을 줄을 모른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집안의 둘째로 태어난 나는 가난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배우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지만 돈이 없어 인문계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못한 채 상업고 장학생으로 들어가 겨우 졸업을 했다. 상고를 졸업하고 전자회사 영업사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나는 십년 동안 정말 앞뒤 바라보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다행히 영업직은 열심히 뛴 만큼 수입이 늘어나 나는 영업직 10년 만에 약간의 융자를 안고 조그만 가전제품 대리점을 열었다. 그런데 사업이 안정되고 빌린 돈도 거의 다 갚아 갈 즈음 친구에게 사기를 당했다. 철석같이 믿었던 놈이라 배신감도 컸지만 좀 살만해지면 결혼을 하려고 연애한번 못하고 열심히 돈만 모은 것을 다 날린 것이다. 남은 것이라고는 아는 사람으로부터 빌린 빚뿐이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지만 우선 어떻게 해서든 빚을 갚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다시 대리점을 내준 회사의 가전제품 외판원으로 나섰다. 날마다 방문판매를 하며 버는 돈 중에서 하루에 3만원씩 빚을 갚아가기로 했다. 매일 저녁 나는 밥 사먹을 돈이 없어도 3만원을 주머니에 넣고 한강다리를 건너 용산까지 돈을 빌려준 사람의 집을 찾아가 돈을 갚았다. 흡사 일수 돈을 넣듯 하루도 빠짐없이 강바람을 맞으며 나는 한강대교 위를 걸었다. 그리고 언제가는 반드시 사업을 다시 일으키리라는 강한 희망을 가졌다. 그렇게 5년을 버텨 드디어 빚을 다 갚았다. 그리고 다시 재기할 계획을 차곡차곡 진행시켰다. 방판을 하다보니 때로 길이 밀려 약속을 어기는 경우가 많아 나는 아예 대중교통이나 작은 오토바이를 이용해 고객을 찾아갔다. 고객들은 때로 오토바이 소리만 들려도 내가 오는 것을 귀신같이 알아맞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우연히 한강다리를 건너는데 매일 3만원씩 돈을 갚았던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10년 지기를 만난 것처럼 반갑게 손을 잡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처음 당신이 하루에 3만원씩 빚을 갚아나가겠다고 했을 때 나는 믿지 않았소. 며칠 지나면 얼굴도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당신은 끝까지 해냈고, 그 사이 당신에 대한 내 믿음은 쌓여갔소. 오히려 당신이 빚을 다 갚고 얼굴을 볼 수 없게 되자 나는 소중한 무엇인가를 잃은 것 같은 기분이 들고 허전하기까지 했지. 당신은 꼭 재기할 것이오. 새로 사업을 시작한다니 내게 당신에게 출자할 기회를 좀 줄 수 있겠오?." 그제야 나는 그동안 돈을 갚은 게 아니라 신용을 쌓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에 열심히만 산다고 돈을 버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열심히 성실하게 노력하면 반드시 기회가 주어진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리고 사업을 하며 가장 주요한 것, 그건 돈이 아니라 바로 신용이라고 생각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