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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자 우리 자매는 엄마와 함께 넉넉하진 않았지만 그런대로 즐거운 삶을 살았다. 부지런한 엄마 덕에 학교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아들이 없는 집에 사위가 아들 노릇하겠다며 매달리는 선배가 너무 든든해서 나는 행복하게 결혼을 했다. 그런데 첫아이를 낳자마자 동생이 열아홉의 나이로 골수암 말기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생후 일주일 된 아기 심장에 구멍이 뚫렸다는 말을 들었다. 수술을 하기에는 너무 어린 신생아여서 몸무게가 좀 늘 때까지 기다려야 했고, 난 아기 건강에 좋은 걸 찾아 먹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편 동생은 그 독한 항암치료를 견디느라 뼈만 앙상하게 남았고, 먹는 대로 토해냈는데 다행히도 내가 만든 음식만큼은 그나마 잘 받아넘겨주었다. 친정 엄마와 둘이서 그렇게 5개월 동생 병 수발을 하다 보니 아픈 아기도 제대로 돌보지 못했고 남편 뒷바라지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오랜 간병에 효자 없다고 했던가. 온몸에 암세포가 퍼져 의료기구에 의지해 겨우 연명하는 동생을 보며 나도 점점 지쳐갔다. 이러다간 동생 때문에 내 가정이 망가져버리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신을 놓았다 차렸다 하던 동생이 차라리 죽여달라며 매달렸다. 그땐 정말이지 너무 지치고 힘이 들어 나도 모르게 소리치고 말았다. “그래 나도 이제 지쳤다. 너도 힘들겠지만 나도 정말 힘들다 응! 애기 병구완도 해야 하는데 너 때문에 이게 뭐니. 그렇게 막말까지 해버리면 여태껏 고생한 게 뭐가 되냐, 정말 마지막 조치라도 하자는 거야?,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울며 매달리던 동생이 한참동안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았다. 불쑥 말을 뱉고나선 그만 내 설움이 북받혀 병실을 뛰쳐나왔다. 그러나 그게 마지막일 줄이야…. 엄마에게 병원에 가보라고 전화한 뒤 집에 오자마자 동생이 영안실로 옮겨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가슴에 비수가 꽂히는 기분이었다. 병실에서 그 말만 안했더라도 그 애가 그렇게 서둘러가진 않았을텐데…. 화장터 문 앞에서 몸부림치는 엄마를 진정시키느라 미처 나를 돌아볼 겨를도 없었지만 피어보지도 못하고 꽃다운 나이에 떠난 동생을 생각하면 세월이 지나도 평생 그 죄를 어떻게 받을까 하는 생각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 살다보면 말을 못해서 후회할 때보다 말을 뱉고난 후 후회할 때가 더 많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아기는 무사히 수술을 받았고 지금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그러나 한창 재롱을 부리는 아이를 껴안을 때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려진다. '용주야 부디 이 언니를 용서해주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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