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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믄 이리 닮았누. 꼭 우리 아덜 같네….” 그날 병실에 도착해서 처음 들은 말이었다. 1년 이상 독한 약과 주사에 지친 탓이라 생각은 했지만 아들까지 못 알아보시다니 명치끝이 아릿해 왔다. “접니다. 어머니”하고 거듭 말씀드렸는데도“아니, 서울 현이가 온 줄 알았다 아이가” 하고 딴소리를 하셨다. 나중에는 나를 보고 아저씨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기가 막히고 억장이 무너지던 기분이 차츰 가라앉고 나자 나는 어머니의 오빠가 되고 아저씨가 되어 함께 맞장구를 쳤다.“하모, 닮았단 소릴 많이 듣제. 오늘은 새각시 같네 그랴….” 그러면 어머니는 정말 새색시처럼 수줍게 웃으셨다. 점심 때 쯤엔 온 식구들이 병원 복도까지 들릴 정도로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어머니는 가끔 정신이 돌아올 때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내 손을 잡고 그 위에 손자 손까지 포개 놓고는 흐뭇해하셨다. 그러다가 금세 뜨개질을 한다며 링거 줄을 이리 감고 저리 풀곤 하셨다. 당신의 일생을 필름처럼 되감아 보는 중이었을까. 일흔 네 해의 생애가 한 편의 가족 비디오로 재생되는 동안, 병실에서는 몇 번의 웃음꽃이 피고 눈물 바다가 이어지고 또 소꿉놀이가 계속됐다. 오후 들어 햇살이 따뜻해지자 어머니는 낮잠에 드셨다. 담요 위에 두 다리를 가지런하게 펴고 잠든 모습이 너무나 편안해 보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어머니는 행여‘애비 없는 자식’소리 듣지 말라고 각별히 당부하셨다. 내가 자란 남해는 섬이어서 쌀도 귀하고 돈도 귀했다. 가뜩이나 없는 살림에 객지 공부를 시키면서 어머니의 발은 얼마나 많이 닳았을까. 자식을 키우면서, 한사람의 가장으로 열심히 살고 또 부부가 서로 번다고 해도 자식을 가르치니 못가르치니 하는데 그 시골 바닷가에서 노동으로 온몸을 삭이시며 다섯 자식을 공부시키셨으니 어찌 어머니가 위대하지 않으랴. 이제 삶의 끝자락에 누워 시름을 잊은 듯 편한 잠 주무시는 어머니를 내려다보며 나는 병실 창가에 오래 서 있었다. 무연히 콧등이 시큰해져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내려다보니 아, 무슨 꿈을 꾸시는지 어머니가 가뭇가뭇 웃으셨다. 나도 따라 웃다가 이불 밖으로 빠져 나온 발을 살며시 만져드렸다. 햇살을 받아 눈부신 두 발이 옛집 마당가의 분꽃보다 더 희고 고왔다. 병실이 다 환해졌다. 2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 오늘 그 예쁜 발을 다시 한 번 만져 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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