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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기가 심해지자 트럭에 야채들을 싣고 아파트나 주택가를 돌며 야채를 파는 이동 야채가게 아저씨들이 늘어났다. 야채 뿐 아니라 각종 식료품과 생활용품을 판다는 확성기 소리가 높아 때로는 공해를 일으킬 정도다. 경쟁이 심해지자 요즘은 동네공터에 야채를 쌓아둔 아저씨들이 집까지 배달을 해주기 때문에 주부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그날도 어느 아저씨가 아파트 앞 동네 골목에 배추, 무 같은 야채를 싣고 와서는 주부들을 불러모았다. “자, 싱싱한 배추 왔어요! 배추가 싸요 싸!" 외출에서 돌아오던 길에 배추가 하도 싱싱해보여 여섯 포기를 산 나는 배달을 부탁했다. “동, 호수만 가르쳐 주세요, 갖다 드릴 테니까요. 염려 마시구요." “5동 415호요." 나는 아무 의심없이 동, 호수를 가르쳐주고는 배추값을 지불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곧 갖다 준다던 배추장수는 저물녘이 되어도 오지를 않았다. 마른하늘에서 난데없이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소나기만 한 차례 퍼부었다. 비가 와서 늦으려니 하고 기다리던 나는 비가 그치고 밤이 되어도 배추장수가 오지 않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휴, 그깟 돈 만원에 양심을 팔다니.….’ 내가 속을 끓이자 남편이 옆에서 한마디를 했다. “뜨내기 장사꾼을 믿은 당신이 잘못이지. 그냥 잃어버린 셈 쳐요." 남편은 위로인지 책망인지 모를 소리로 내 심사를 건드렸고 나는 허탈해진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다음 날은 볕이 좋아 빨래를 했다. 탈탈 털어서 베란다에 줄을 맞추어 널고 있는데, 점심 무렵이었다. "딩동." 벨소리에 문을 열었더니 어제 그 배추장수 아저씨가 서있었다. “저 혹시 어제 배추 사신 적 있으세요?" 땀에 절은 허름한 차림의 남자를 보고 나는 반가운 마음보다 책망하는 마음이 앞서 따지듯 말했다. “네, 맞아요. 근데 왜 인제 오셨어요?" 배추장수는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쪽지 하나를 내밀었다. “동 호수를 적은 종이가 비에 젖어서… 다 번지고 맨 끝에 5자만 남았거든요, 그래서 이 단지 안 5호라는 5호는 다 돌아다니다가 날이 어두워져서 그만…, 아유 이거 죄송합니다." 그는 고개를 숙이며 연신 사과했고, 나는 갑자기 미안한 생각에 “어머나, 난 그런 줄도 모르고…." 하며 얼른 배추를 받았다. 그 아저씨는 숨박꼭질 같은 집찾기에 지친 듯 입술이 부르터있었다. 나는 새삼 미안해져서 차라도 한잔들고 가시라고 권했으나 아저씨는 어서 가서 배추를 팔아야한다며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아파트 5층까지 배추를 갖다달라고 한 것도 죄송하거니와 그분의 진심도 모른 채 의심까지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 정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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