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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 어느 날이었다. 마당에 지게를 세워놓고 땔감을 준비하고 있는데 담임선생님이 흰 고무신을 신고 찾아오셨다. 당시 학생회 간부였던 나는 부끄럽다거나 싫다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누추한 집으로 모셔야 한다는 생각에 선생님의 방문이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내 표정엔 아랑곳없이 마당한쪽 댓돌에 앉으신 선생님은 어려울수록 학업을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강조하시며 주머니에서 누런 월급봉투를 꺼내어 통째로 내미셨다. 두 동생과 어머니의 고생을 보며 진학이냐 취직이냐를 심각히 고민하던 나는 진학준비를 서두르라고 선생님 말씀에 고무돼 얼떨결에 선생님의 돈을 받았다. 그러나 밖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선생님도 연로하신 부모를 모시고 아이들과 어렵게 가정을 꾸리시는데 그런 폐를 끼칠 수가 없다며 돈을 돌려드리라고 말씀하셨다. 더구나 선생님 어머니가 수술을 해도 나을지 어쩔지 모르는 깊은 병이 들어 걱정하고 계시다는 말을 듣고 나는 털썩 돈을 받은 손을 부끄러워하며 이튿날 선생님을 찾았다. 그리곤 누구의 도움없이 한번 일어서보겠다는 말을 건넨 뒤 월급봉투를 돌려드리자 선생님은 말없이 내 어깨만 두드리셨다. 졸업 후 1년간 서울에서 주경야독하다가 나는 군에 입대했고, 제대 후 야간대학에 진학해 낮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업을 마쳤다. 그러나 어려운 고비가 숱하게 지나갔지만 결코 선생님의 도움을 요청하진 않았다. 선생님께 올곧게 헤쳐나온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연락은 없었지만 한 제자에게 선뜻 월급봉투를 건네주신 선생님의 모습은 오랫동안 내 삶을 열심히 살게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정년퇴임 후 경상도 어느 시골에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와 함께 인사를 드리러갔을 때 선생님은 아직도 그 흰 고무신을 신은 채 밭을 매고 계셨다. 흙묻은 손으로 텊석 날 껴안으신 선생님은 만면에 함박웃음을 띤 채 말하셨다. "땅과 인간은 같이 가는거야, 사랑과 정성을 쏟으면 꼭 알찬 열매를 맺거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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