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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목욕탕을 다녀왔다. 거의 1년 만에 같이 가본 목욕탕이다. 내가 고3 이었을 때, 사업의 부도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아버지는 특별한 직업이 없이 용역을 다니셨다. 처음엔 힘들어하셨지만 어느 정도 지나니 이골이 나셨는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러던 어느 날 용역회사에서 성실한 아버지를 장기고용으로 채용하면서 경기도로 출장을 가시게 됐다. 우리 식구들은 그저 아버지 일이 잘 된 것인 줄만 알고 기쁘게 아버지를 배웅해드렸다. 한동안 소식이 없던 아버지는 보름이 지나서야 엄마에게 연락을 해왔다. 보고싶으니까 올라오라고…. 엄마는 새삼 좋아하시며 서둘러 아버지께로 가셨다. 그때 난 대학을 진학해 영어 연수중이어서 기숙사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출입이 자유롭지 못해 엄마와 동행하지 못했다. 그날 밤 난 엄마에게서 감당못할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가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더욱 놀란 것은 촐장을 가신 첫날 사고가 났는데, 아버진 말씀을 하지 않으시고 홀로 치료를 하시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된 후에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보름동안이나 병원에 혼자 계셨으니 주위 환자들은 홀애비인줄 알았다고 했다. 사고는 기계에 손가락이 잘려 왼손 엄지손가락 첫 마디가 날아간 것이다. 그 소식을 듣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내가 욕심을 부려 사립대학을 진학하느라 아버진 무리해서 일을 하셨고, 어려운 가정형편과 그 밖의 문제들이 꼬여 생활이 말이 아니었다. 정말 부모 못할 짓을 시키며 대학진학을 고집했고, 그로 인해 고생하신 엄마와 동생들에게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석 달이 지났다. 아버진 수술을 하셨고 다행히 심한 장애는 입지 않았다. 기반이 약한 회사였던지라 치료비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 어머니는 병원비를 마련하느라 고된 일을 시작했고, 우린 서울에서 집을 얻지 못해 경기도내 작은 전셋집으로 이사를 했다. 아버지가 퇴원을 하며 기차를 타고 집으로 내려오셨다. 반가움보다 아버지가 끼고계신 벙어리장갑 한쪽이 눈에 띄어 울컥 눈물이 솟았다. 집에 도착한 아버지는 피곤하셨는지 곧 잠이 드셨다. 난 그런 아버지 옆에 누워서 잠을 청했다. 정말 오랜만에 아버지 옆에 누워본 것이다. 아버지의 다친 손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아직 일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못되었다. 난 오랜만에 아버지께 목욕탕을 가자고 졸랐다. 어렸을 적, 아빠랑 목욕탕을 가는 날이면 아버지가 때를 너무 세게 밀어 목욕탕가기가 정말 싫었다. 아프다고 몸을 뒤로 빼다 몇 대 맞기도 했던 기억이 남아 있는데, 지금은 내가 아버지의 왼손을 주시하며 행여나 물에 젖을까 조심조심 씻겨드렸다. 어느 새 부쩍 늙어버린 한 남자의 앙상한 모습이 내 눈앞에 있었다. 젊은 날 내 몸을 씻기던 그 탄력있던 젊은 육신은 어디가고…. 아버지가 부도를 내고 술로 세월을 보낼 때 나는 얼마나 아버지를 미워했던가, 엄마와 싸우실 때 아버지를 탓한 적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지금은 손을 쓰기가 불편하고, 몸은 마르고 흰머리가 귀 옆을 덮은 초로의 힘없는 남자가 내게 몸을 맡기고 있었다. 핏줄이란 그런 것인가, 새삼 아버지의 힘든 인생이 가슴에 저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열심히 아버지를 씻겨드리며 아들로써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말을 가만히 되뇌었다. 아버지 사랑해요. 저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꼭 아버지 엄마께 효도할께요.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힘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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