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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소작농이었던 우리 집은 엄마가 남의 땅에 농사를 지어 곡식과 채소를 내다 팔아 그것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갖은 고생을 다 겪은 엄마는 유난히 야위고 주름살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엄마의 눈이 심하게 처져 속눈썹이 눈동자를 찌르곤 해 매번 내가 족집게로 눈썹을 뽑아드리곤 했다. 처음 뽑을 땐 아프실까봐 조심했지만 언젠가부터 귀찮은 생각이 들어 두세 개씩 마구 뽑았다. 시간이 갈수록 눈썹을 뽑는 횟수는 늘어났고, 병원에 가서 수술을 하면 된다는데 여유가 없는 우리집 형편으론 엄두도 못낼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한참 달콤한 아침잠에 빠져 있는데 엄마가 부르셨다. "계화야, 엄마 눈이 너무 아프다. 속눈썹 좀 뽑아주겠니?" 다른 때 같으면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투덜거리면서도 엄마의 눈썹을 뽑았을텐데, 그 날 따라 졸음이 쏟아졌다. 귀찮다며 자꾸 짜증을 내는 내게 엄마는 "그럼 이따 저녁에 뽑아 줘라" 하며 그냥 일터로 가셨다. 저녁 무렵 지쳐서 돌아오신 엄마는 저녁 지으랴 청소하랴 바쁘셨다. 또 잔뜩 술에 취해 들어오신 아버지 때문에 '오늘 저녁 엄마의 속눈썹은 못 뽑겠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리곤 빨리 돈 벌어 엄마의 눈을 수술해 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다음날 월요일 학교 수업 중에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을 들었다. 엄마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신 것이다. 병원으로 달려간 나는 엄마의 시신을 붙들고 "내가 엄마를 돌아가시게 한거야”하고 통곡하며 몸부림쳤지만 한번 가신 엄마는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하셨다. 그날 눈썹만 뽑아드렸더라도 차가 오는지 안 오는지 확실히 보였을 텐데…. 자식은 효도하려하나 부모가 기다리지 않는다더니 효도는 커녕 엄마의 절실했던 고통을 외면한 채 황망히 저승길로 보낸 나의 죄책감은 청소년시절 내내 내 가슴을 멍들게 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상처는 좀 가라앉았지만 두 아이를 낳아 주부가 된 지금도 가끔씩 엄마생각이 날 때면 가슴을 쓸어내리며 오랫동안 아픔을 삭여야 한다. 다행히 1년 전부터 시작한 맹인들을 위한 낭독 봉사일이 그 상처를 조금씩 어루만져주고 있다. 앞을 못보고 점자도 읽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동화나 소설책을 녹음해 무료로 대여해주는 일인데 일주일에 3일은 꼭 자원봉사센터에 들러 낭독봉사를 하고 있다. 성우는 아니지만 좀 더 재미있게 들려주기 위해 나는 열과 성을 다했고, 하루종일 책을 읽어 목이 쉬어 돌아올 때도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하늘에서 내 모습을 보는 엄마마음이 좀 편안하실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 자원봉사를 시작한 후부터 내 가슴앓이는 조금씩 아물기 시 작했고, 테잎을 빌려간 맹인들에게서 감사하다는 전화를 받을 때면 '엄마에게 불효했던 삶을 이렇게나마 보답하는구나' 하고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엄마가 살아계신다면 날마다 재미있는 소설책을 읽어드릴 수 있을텐데' 하는 회한에 새삼 가슴이 미어져 벽에 걸린 사진을 바라보면 눈썹이 말려 가늘게 눈을 뜨신 엄마는 사진 속에서 애써 아픔을 감추시고 나를 향해 희미하게 미소짓고 계신다.‘아! 그리운 내 어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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