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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얼굴은 황달에 걸린 사람처럼 노란색이다. 외부로부터 철저히 차단된 병실에서 정맥 주사관들과 모니터에 연결되어 누워있는 아버지. 한때는 체격도 건장했고, 그토록 위엄이 있으셨건만 지금은 15킬로나 빠진 체중으로 힘없이 누워있다. 아버지의 병은 췌장암으로 판명됐다. 의사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앞으로 6개월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췌장암은 방사능 치료나 화학요법으로도 소용이 없기 때문에 의사들은 별다른 희망을 걸지 않았다. 며칠 뒤 아버지가 병원 침대에 앉아있을 때 나는 아버지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아버지, 아버지가 아프니까 그동안 아버지께 효도도 못하고 제대로 말도 잘 하지 않은 것이 자꾸 후회돼요. 제가 정말 아버지를 좋아하고 있나 봐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지만 애써 어리광을 부리며 아버지를 껴안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어깨와 두 팔은 잔뜩 굳어있었다. “그러지 마세요, 아버지. 아버지를 정말 안아보고 싶어요." 그 순간 아버지는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권위적이고 말이 없던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일이 극히 드물었고, 그런 아버지가 너무 멀게 느껴져서 사춘기 시절엔 TV에 나오는 젊고 다정한 아빠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병든 몸으로 죽음을 눈앞에 둔 아버지를 보니 새삼 자식들 공부 가르치고, 나름대로 가장의 도리를 다하느라 홀로 힘들게 견뎠을 아버지의 뒷모습이 느껴지니 이제야 철이 드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아버진 그렇게 아프면서도 완고하기만 하셨다. 어줍잖은 내 어리광에도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으신 채 “나 그만 누워야겠으니 집에 가서 네 엄마 보내라!” 하시는 게 아닌가. 그동안 고지식하기만한 아버지가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많이도 원망했고, 때론 분노의 감정까지 느꼈었지만 이제 가족들과 따뜻한 포옹도 나누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게 해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껴안아드리는 것이 나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남자가 되기 위해서는 말없이 과묵하게, 감정을 억제해야 한다고 배워온 아버지 세대가 서양사람들처럼 딸과 거리낌없이 껴안는다는 일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었다. 몇 번을 시도해도 아버진 어색해하셨고, 그냥 힘없이 ‘픽’ 웃으시며 돌아누워버리곤 했다. 그러나 핏줄은 뭘 해도 걸리지 않는 법. 난 초등생 아이처럼 헤죽거리며 틈만 나면 아버지에게 다가가 “좀 더 가까이 와보세요 아버지, 팔을 저에게 두르시구요"하고 껴안기를 시도했다. 침대 끝머리에 앉아 아버지가 나에게 팔을 두를 수 있도록 몸을 숙이며 "이제 꼭 껴안아 보세요. 다시요. 다시 한번 절 껴안아 보세요."하며 옆 사람이 웃는 줄도 모르고 아버지를 껴안고 또 껴안았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아버지에게 최초로 껴안는 법을 가르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 긴장된 자세를 버리는 데는 그로부터 몇 달이 걸렸다. 아버지를 찾아갈 때마다 나는 껴안기를 포기하지 않았고, 그러자 아버지도 차츰 자신의 감정을 실어 두 팔로 나를 껴안기 시작했다. 결국 아버지는 평생에 걸친 습관을 바꾸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마지막 떠나시던 날, 아버진 세상에서 가장 인자하고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말숙아, 내 이쁜 딸내미, 널 사랑한다." 내가슴에 남은, 그리고 아버지에게서 들은 처음이자 마지막 애정 표현이었고, 내가 아버지와 껴안은지 꼭 백번째 포옹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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