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 선생, 나 명예퇴직 신청했어요”. 평소 직원들 간 유대도 좋고, 유머스런 말로 우울한 교무실을 활짝 웃게 만들던 최 선생이 나직히 말했다. “예?” 깜짝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내게 최 교사는 씁쓸하게 웃으며 “교사로서의 자긍심도 느껴지지 않고, 이렇게 아이들에게 끌려 다녀야하니 회의가 느껴져 더 이상 못 버티겠어요. 내 천직이 아닌가 봐요….” 학교폭력 문제로 몇 번이나 경찰서 조사를 받고 나온 최 교사는 결국 그렇게 학교를 떠났다. 그리고 남은 교사들도 2세를 가르친다는 보람보다는 ‘그저 먹고사는 직업일 뿐이야’ 하는 자조감으로 오랫동안 가슴이 답답했다. 그 이후 나는 그렇게 시골지역 중학교로 이동이 됐다. 그때는 무상급식이 이루어지지 않아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아무도 모르게 무료급식 신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부모가 이혼하고 조부모 손에 맡겨진 학생들은 가장 기본적인 생존의 욕구도 결핍돼 있어 항상 기가죽어 있었다. 그런 학생들을 보며 아이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칭찬 수표’라는 것을 만들었다. 모든 학생이 서로 칭찬을 주고받을 수 있는 문화를 정착시키리라 마음먹은 것이다. 우선 학교 내에서 통용되는 칭찬 수표를 제작하고 각반에 한명씩 ‘칭찬 은행원’을 뽑아 칭찬 수표를 관리하도록 했다. 그리고 한 달에 한번 칭찬 수표를 가장 많이 받은 남녀 학생을 ‘칭찬 킹'과 ’칭찬 퀸' 으로 뽑았다. ‘칭찬 코디네이터’는 그 학생들이 예금한 칭찬 수표를 모아 액자로 제작해 교내 곳곳에 전시하는 역할을 했다. 수학 성적이 20점을 맴돌던 민영이에겐 “수학 성적과 관계없이 너를 성격이 참 좋아” 라는 칭찬수표를 전넸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유방암으로 투병중인 어머니와 함께 사는 민석이에겐 ‘인내심 짱! 역경지수 짱!’ 이란 수표를 보냈다. 이런 칭찬수표를 받은 학생들은 처음엔 ‘피식’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더니 언젠가부터 조금씩 태도가 달라졌다. 학교생활에 열의를 갖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26년간 교직에 근무하며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 능력에 비해 학업 성적이 부진한 학생, 친구 관계에서 잦은 갈등을 일으키는 학생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바로 ‘칭찬 받은 경험’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칭찬 수표가 발행되면서 학생들 얼굴엔 미소가 번졌고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는 학생이 늘어났다. 그렇게 교직을 마감할 때까지 칭찬수표는 학생과 나의 교감에 윤활유가 돼주었고, 그래서 교직은 내게 참 보람있는 직업으로 남았다. 요즘은 가끔씩 경로당에 찾아가서도 ‘수표’를 건네준다. 할머니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얼른 종이를 펼쳐보다가 소녀들처럼 ‘까르르’ 웃음을 터트린다. 그래서 나는 내 직업을 ‘칭찬 디자이너’라고 말하는 습관이 생겼다. 학교폭력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요즘,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옛말은 말 그대로 옛말이 됐다. 요즘은 교사에게 눈을 치뜨는 학생들을 대놓고 나무랄 수도 없는 시대이니 교사로서의 자존감을 느끼기가 어려울 것이다. 어깨가 처져있는 이 시대 교사들을 격려하며, 나는 내가 행복하게 경험했던 ‘칭찬수표’를 학생들에게 실행해볼 것을 권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