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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아버지는 늘 바쁘고 시간도 없었다. 그래서 저녁식사는 거의 엄마와 나 둘만이 해야 했다. 어쩌다 아버지와 마주치면 낯선 아저씨처럼 어색하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잠결에 엄마 아빠의 말다툼 소리가 들렸다. “당신, 일도 없이 나가는 거 다 알아요. 마침 내가 할 만한 일이 있다니 내일부터 나갈께요. 마침 방학이니 그동안 부자지간에 서먹했던 것도 풀고 아들과 잘 지내봐요…." 그리고 이튿날 눈을 뜨자 엄마는 없고 신문을 보고 있는 아버지의 등만 보였다. 난 가슴이 꽉 막히는 기분이었다. 어쩔 수 없이 밥을 먹고 책을 펴 들었지만 눈은 자꾸만 문 쪽으로 갔다. 차라리 아빠가 나가기라도 했으면 싶었다. 화장실 가는 척 슬며시 뒤돌아보니 신문만 내려다보는 아빠의 뒷모습이 왠지 쓸쓸해보였다. '잘못 걸린 전화라도 왔으면’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그때 전화벨이 크게 울렸다. 기다렸다는 듯 아버지가 급히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아, 그래 기다려라…." 아버지 목소리가 이내 잦아들었다. 내 친구 전화였던 것이다. 전화를 받으니 친구란 놈은 대뜸 "너희 아빠 왜 안 나갔냐, 회사 잘렸냐?" 하고 물었다. "임마 짤리긴 뭐가 짤려!" 하고 전화를 ‘꽝’ 끊는데, 아버지가 못들은 척 신문만 보고 있었다. 왠지 죄를 지은 것 같았다. 아빠라고 부르기가 어색해진 시기, 그렇게 아버지와 아들이 되어간 시간. 어릴 땐 즐겁기만 했던 부자 사이가 내가 고등학생이 되고 부턴 서먹한 관계가 돼있었다. 엄마가 일을 나가고 아버지가 집에 있는 생활. 방학동안 놀 궁리만 하던 나는 그 시간이 싫어서 학교로 학원으로 바쁜 척 쫒아다녔다. 외출을 잊어버린 아버지와 지내는 나날도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맞춰가기 시작했다. 배고프면 함께 뭔가를 찾아먹어야 했고, 간단한 청소 등은 거들어야 했다. 뭔가가 어색한 순간을 모면하려 어느 날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 아빠 옆에 앉았다. 뉴스라도 보는 척 하려는데 갑자기 남여가 뽀뽀하는 장면이 나왔다. “어허 이건 엄마랑 봐야 하는데” 하며 아빤 커다란 손으로 갑자기 내 눈을 가렸다. 순간 둘 다 멋쩍게 ‘픽’ 웃고 말았다. 그때 아버지가 슬그머니 일어나더니 말했다. “라면 먹을래?”. 나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아빠와의 교감이 되살아났다. 어릴 때처럼 웃음이 나왔다. “콜!”. 아빠랑 장난감 기차를 만들던 그때처럼 거실 한쪽에서 즐거움이 잔잔하게 피어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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