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이고 그 몸으로 무슨 공부여” 뇌출혈로 쓰러진 경험이 있던 내가 공부를 시작했을 때 많이 듣던 말이다. 육십의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한 이유가 있었다. 몸이 약한 어머니가 홀로 자식들을 보살필 수 없자 육남매의 맏이였던 나는 중학교 진학 대신 집안일을 도왔다. 그런데 결혼할 나이가 되었을 때 학력이 문제가 됐다. 중매를 선 시댁 고모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중학교는 나왔다고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알고 보니 시아버님은 학벌을 따지는 사람이었다. 평소 아버님은 공부를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며느리는 아들과 농사를 지어야 하니 중학교만 졸업해도 된다며 참한 아가씨를 소개해 달라고 했단다. 얼떨결에 거짓말을 하게 된 나는 평생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자식들이 학교에서 가져오는 종이엔 어김없이 부모 학력을 적는 칸이 있었다. 그때마다 떨리는 손으로 ‘중졸’이라 적었다. 모임에서도 초등학교만 나온 게 들통 날까 싶어 조마조마했다. 어느 날 용기를 내 남편에게 고백했다. 그러자 “그게 뭐가 중요해 사람이 사람답게 살면 되는거지”라고 위로해줬다. 자식들 출가시키고 시간이 되면 공부를 시작해보리라 다짐했는데, 어느 날 뇌출혈로 쓰러져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는 울면서 기도했다. “하느님 이대로 죽는다면 죄를 짓는 겁니다. 중학교를 졸업했다고 평생 거짓말을 했어요….” 투병생활 끝에 간신히 몸을 추스렸다. 자리를 떨치고 일어난 후 마음이 약해질까봐 바로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했다. 중학교 졸업이 목표였다. 처음엔 도저히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이 밀려왔지만 하루하루 글씨를 짚어가며 책을 읽다보니 아둔한 머리도 조금씩 깨우침이 왔다. 그리고 중졸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이제야 오랜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났다는 홀가분함에 새로운 용기가 솟았다. 환갑이 지난 나이지만 도전하는 건 나이보다 의지가 중요하다. 나는 또다시 일을 저질렀다.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입학해 할머니 고등학생이 된 것이다. 하루하루 공부를 따라가는 건 어렵지만 사는 건 즐겁다. 설사 졸업을 못하면 또 어떠랴. 뜻을 세워 실천했고, 필생의 소망을 풀었는데. 가끔은 손자가 전화로 묻는다. “할머니, 주말에 놀러가도 돼요?” “아…,여름방학에 오면 안되겠니? 내가 기말고사 준비를 좀 해야되거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