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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시기 전, 아버지는 온 식구가 둘러앉은 밥상에서 자식들에게 다짐했던 말이 있다. ‘자신을 속이지 말라’고. 내가 불혹의 나이에 가까워지던 어느 날 친구가 솔깃한 제안을 했다. 원룸을 같이 사서 월세를 받으면 어떻겠냐고. 친구를 믿었지만 1년 만에 그 일은 수포로 돌아갔다. 친구를 죄인 다루듯 대했고 사이도 멀어졌다. 사정을 안 아버지가 말했다. “친구 원망할 것 없다. 너 역시 수고하지 않고 얻으려고만 하지 않았니!” 나는 아버지가 야속했다. 하지만 시간을 지나고서야 알았다. 내가 사기를 당한 것이 아니라 요행을 바랐다는 것을. 아버지는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할지라도 똥지게를 질 수 있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대학졸업 후 취직을 위해 수많은 이력서를 여기저기 넣었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다. 원하는 직장을 다니는 친구를 보니 자존심이 상했다. 집에서 놀 수만은 없어 백화점 판매원으로 일했다. 내 학벌과 상관없는 일이었다. 누구에게 알리기도 부끄러웠다. 그때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너는 대단한 사람임에도 대단치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나중에야 이해하게 됐다. 내가 대단한 사람인 양 착각했다는 것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삼우제를 지냈다. 어머니가 아버지 가방을 끌어안고 슬픔을 쏟아냈다. “아이고 어쩐대유, 이 보물단지 못 미더워 어찌 눈을 감았대유…”. 지퍼를 열어보았다. 간장약, 돋보기, 성경책, 흙손, 냄새나는 작업화가 쏟아졌다. 육체노동을 했지만 꼿꼿하게 사셨던 아버지. 그 삶을 싫어했고, 때로 외면하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난수록 아버지의 삶이 등대처럼 여겨진다. 아버지보다 나는 훨씬 가방끈이 길지만 나이 들어서도 오랫동안 아버지의 노동에 기대 빌붙어 살았다. 그러면서도 아버지의 훈계가 지겨웠다. 양심속이지 않고 반듯하게 사는 삶,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표 나지 않지만 묵묵히 어둠 속을 비추는 등대. 자식들이 그런 등대가 되길 바라신 아버지의 생전의 꿈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결국 먼 훗날 후회할 줄 알면서도 나는 이대로 적당히 살 게 될 것 같다. 그러나 왠지 가슴에 큰 돌이라도 얹어놓은 것처럼 답답하다. 변화는 힘들지만, 열일을 버리고라도 멀리 해안을 찾아 조용히 바다를 비추는 등대라도 보고 와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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