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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 전 친척 집에 갈 일이 있어 복잡한 서울에서 아이와 함께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안은 한낮이어서 인지 의외로 한산했다. 아이와 내가 앉아있고, 맞은편에는 연세 지긋한 노인만 있었다. 아이는 피곤했는지 금세 잠들었다. 나는 무심코 노인을 쳐다보았는데, 낡은 가방과 얼룩진 옷이 눈에 들어왔다. 얼굴이 좀 붉은 것을 보니 낮술을 한잔 한 모양이었다. 나는 순간 겁이 나서 눈이 마주칠까봐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때였다. 노인이 가방 안에서 뭔가를 찾는지 가방을 이리저리 뒤적거렸다. 그러더니 슥 꺼내드는 것이 과도가 아닌가. 순간 나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난 온몸이 마비된 것처럼 뻣뻣하게 굳었고, 주위에 도움 줄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인은 다시 가방 안을 뒤졌다. 그때 지하철 문이 열렸다. 나는 이때다 싶어 아이를 안고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나와 아이의 몸은 뜻대로 따라 주지 않았고 문은 속절없이 닫히고 말았다. 그렇게 혼자 상상을 하고 있었는데, 노인은 다시 가방에서 사과하나를 꺼내들더니 칼로 껍질을 깎는 게 아닌가. 사과 한 알이 허연 속살을 드러냈다. 긴장했던 온 몸에 힘이 빠졌다. 그런 내 얼굴 앞으로 주름진 손 하나가 다가왔다. 거무스름한 손바닥 위에는 사과 세 조각이 놓여 있었다. 나는 어색하고도 불편해서 거절하고 싶었지만 차마 안 먹겠다고 할 수가 없어 고개만 끄덕이며 감사를 표하곤 사과를 집었다. 그러자 노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지하철 양 옆에서 노인과 나와 아이가 사과를 먹었다. 사과는 의외로 달았고, 아이가 두쪽 나는 한쪽을 금방 먹었다. 사과를 다 먹고 나자 노인은 다음 역에서 또 그 미소를 띤 채 무심히 내렸다. 노인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안도감에 쏟아진 눈물은 아니었다. 사과 한 쪽도 나눠주는 아버지 같던 어르신을 허름한 차림만 보고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은 나 자신이 부끄러워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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