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환경미화원이던 아버지가 일년전 교통사고로 하반신마비를 당해 일년째 방에만 누워계신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아버지가 안됐다기보다는 창피한 생각에 친구들이 놀러온다고 하면 온갖 핑계를 대어 못오게 했다. 학교가 끝나면 아버지 밥을 차려드리기 위해 곧장 집으로 와야만 했다. 고등학생인 형은 학교에서 자율학습을 해야 하고 엄마는 공장에 나가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밥을 차려드리고 나면 나는 안방에서 잘 때까지 TV를 보는데 아버지는 뉴스만 좋아해 "석현아 뉴스 안하니?" 하고 물으셨다. 하반신을 못쓰는 아버지로서는 달리 볼만한 프로가 없었던 것이다. 난 사실 만화영화를 그리 좋아하진 않았지만 아버지가 뉴스를 물을 때마다 “나 이거 보는거란 말예요!” 하고 짜증을 냈다. 그리고 만화영화가 끝난 후 장난감광고가 나오면 그걸 뚫어지게 바라보며 '아버지가 누워있지만 않으면 나도 저걸 살텐데.'하며 아버지를 원망했다. 그러던 어느날 밤이었다. 자다가 오줌이 마려웠다. 화장실을 가려는데 안방에서 엄마목소리가 들렸다. "뭐하려고요. 누워있는 사람이…." "그냥 귤이 먹고 싶어서…." "알았어요. 제가 내일 사오죠." "아냐, .당신 바쁠텐데 그냥 석현이에게 사오라고 하지 뭐…." 난 속으로 화가 치밀었다. 엄마는 힘들게 일하는데 고작 귤이 먹고싶다고 엄마에게 돈을 달라는 것 같다. 그렇게 무능한 아버지 보단 차라리 아버지없는 아이가 되고 싶었다. 그 날도 학교가 끝나고 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집으로 왔다. 내가 없으면 아버지가 굶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집에 엄마가 있었다. 공장이 물건이 없어 당분간 쉰다고 했다. 엄마는 자그만한 부엌에서 설겆이를 하고 난 텔레비젼 앞에 앉아 만화영화를 봤다. 당시 한참 유행하던 '매칸더 V'였다. 한참을 보고있는데 아버지가 불렀다. 인상을 한껏 찌푸리고 쳐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오줌통이다. 아버지는 병원에서 준 오줌통에 소변을 봤다. 항상 약을 복용하기 때문에 오줌냄새는 어린 내가 참기에도 정말 힘들었다. 미안한 얼굴로 나에게 오줌통을 내밀었다. 내가 온갖 인상을 다 쓰면서 오줌통을 받았을 때 아버지 손에는 삼천원이 들려 있었다. "쉿...너희 엄마가 보면 뺏을거다. 이걸로 저 텔레비젼에 나오는 장난감 사…." 그 귤값이었다. 엄마에게 귤이 먹고싶다고 받아낸 돈. 물론 그 돈으로 저 텔레비젼에 나오는 장난감을 사기에는 모자란다는 것을 아버지는 모르실거다. 당시 삼천원이면 적은 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텔레비에서 광고하는 장난감을 살만큼 큰 돈도 아니었다. 웬지 양심의 가책이 되고 눈물이 났다. 그리고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몸을 가누지 못해 어린 자식에게까지 무시당하면서도 아들에게 장난감을 사주고 싶었던 가련한 아버지의 그 마음이…. 새삼 그런 식으로라도 자신의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아버지의 사랑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는 말없이 오줌통을 비운 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가만히 말했다. ".죄송해요…." "허헛 뭐가….?" "그냥요…." "훗..그러고보니 우리 석현이도 다 컸구나…." 아마 그때부터 난 철들기 시작한 것 같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