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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한낮, 집배원 강씨가 땀을 뻘뻘 흘리며 우편물을 배달하고 있었다. 그가 맡은 구역은 사람 많고, 아이들 많고, 악다구니도 많은 달동네였다. 어느 날, 바쁘게 배달을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할머니 혼자 사는 허름한 집 앞에 종이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우편물이 미처 배달이 안된 것은 아닌가’ 하고 오토바이를 세운 뒤 무심코 들여다보니 수도요금 고지서였다. 그냥 그 집 대문 틈에 용지를 끼우려다 말고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다시 보니 수도요금이 상당히 많이 책정돼 있는 것이었다. ‘분명 혼자 사는 할머닌데 무슨 수도세가 그렇게 많이 나온 것일까, 검침이 잘못된 줄도 모르고 계속 돈을 내고있는 것은 아닐까?’. 마음씨 좋기로 소문난 그는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그 집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슈?" "아 할머니, 수도세 용지를 보니깐 수도관이 새는 것 같아서요. 확인해 보시라고요…" 할머니는 그냥 웃으며 "많이 나왔을게유. 그럴 일이 있으니깐 걱정말아요. 지난 달부터 식구들이 좀 늘었거든…." 자식들을 다 출가시킨 뒤 외롭게 살던 할머니가 무슨 식구가 늘었나 싶어 물어보니 하두 심심해서 거동이 불편하고 의지할 데 없는 상노인 몇 명을 집에 들여 동거를 시작했다며 웃었다. 때문에 대소변을 받아내고 빨래를 해대느라 수도요금이 많이 나왔으니 그냥 가라고 손을 젓는 것이 아닌가. 강씨가 ‘부업으로 시작한 일’이냐고 무심코 묻자 할머니는 웃으며 오갈데도 없는 노인들이 무슨 돈이 있어 세탁비를 내겠냐고 크게 웃었다.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 집을 돌아나온 강씨는 웬지 뒷통수라도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본인도 힘없는 할머니가 다른 노인들을 돌보겠다고 나섰다니…. 다음날 정오 무렵. 그 허름한 집 대문 앞에는 우편배달 오토바이 한 대가 멈춰 섰다. 대문을 들어선 강씨는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을 새도 없이 팔을 걷어붙이고 마당 한쪽에 쌓인 빨래를 거들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말없는 미소로 바라보며 "아. 좀 쉬었다 하구려. 젊은 사람이 생각이 깊기도 하지." 하며 흐믓한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할머니. 내일 또 봬요." 힘차게 대문을 박차고 나가는 강씨의 모습을 할머니는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점심시간을 이용해 산동네에 오른 강씨는 허름한 할머니집 대문 앞에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오토바이가 석 대나 서 있었기 때문이다. 얼른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낯익은 동료들이 열심히 다라에 담긴 담요를 밟고 있었다. 놀라는 그의 얼굴 위로 동료들이 소리쳤다. "자네가 점심시간마다 실종된다는 소문을 듣고 뒤를 밞았는데, 이런 재미를 혼자만 보면 되겠나, 그래서 우리도 점심을 급히 먹어치우기로 했다네! 그리고 퇴근길엔 여직원들도 올거야. 우리도 자네처럼 살맛도 좀 느껴보며 살아야 하지 않겠나…”. 호탕하게 웃어제치는 동료들의 모습 뒤로 할머니의 얼굴에도, 방에서 힘없이 바라보던 노인들의 얼굴에도 함박웃음이 물보라처럼 번지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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