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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나흘에 걸쳐 치러진 중간고사 마지막 날, 집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마냥 가벼웠다. 집까지 반쯤 왔을까, 반대편 길에서 남학생들 여럿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괜히 쑥스러워 고개를 살짝 숙였는데, 내 옆을 지나치던 그들 중 한 남학생이 갑자기 “웬 무냐?” 하고 말했다. 그 말에 가슴이 ‘뜨끔’ 하면서 나도 모르게 얼굴이 발개져서 더욱 고개가 숙여졌다. 순간 입고 있던 교복치마 아래로 통통한 내 종아리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슬쩍 허리에 손을 대고 치마를 아래로 끌어내렸다. 그런데 그때 다른 남학생이 한마디 거드는 것이 아닌가. “아니야, 단무지 같은데….” 너무도 창피한 나머지 나는 종종걸음으로 얼른 그곳을 지나쳤지만, 저녁 내내 그 일이 떠올라 자꾸만 속상했다. 다음날 아침, 언니랑 함께 학교에 가다가 어제 그 장소를 지나게 되었다. 그런데 길모퉁이를 돌자 언니가 “어머, 웬 단무지니?” 하는 것이었다. 불현듯 어제의 악몽이 되살아나 언니에게 괘한 신경질을 내다가 무심코 고개를 옆으로 돌렸는데, 그만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길모퉁이에 큰 단무지가 검은 비닐봉지에서 반쯤 삐져나온 채 술병과 함께 나뒹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가까운 곳에서 일하던 인부들이 술안주로 먹고 길가에 버린 듯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픽’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래서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인가. 한창 외모에 신경쓰이는 나이라 남들의 조그만 말 한마디도 일일이 신경이 쓰인다. 정작 남들은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는데도 말이다. 내 친구 미영이 말처럼 다리가 통통하면 어떠냐, 튼튼하면 그만이지. 교통사고로 한쪽다리를 잃고도 멋지게 펜싱선수로 나선 장애인 펜싱선수가 김선미씨가 한 말이 생각난다. 우리는 두 다리로 그냥 걸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알아야한다고, 걷고 서 있을 수만 있는 것도 행복이라던 그 말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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