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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을 바라보던 나이에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평생 가슴에 맺혔던 배움에 대한 한을 풀기위해 용단을 내린 것이다. 스물네 살에 결혼해서 아들 넷을 낳아 길렀다. 10년 가까이 내 등에는 아이 하나가 업혀 있었다. 그러고도 그 아이들을 키우며 약 20년 동안 시장에서 점원도 없이 혼자 아동복 도매상을 운영했다.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서울을 한달에 적게는 두 번, 많게는 네 번씩 밤차로 오르내렸다. 남편은 신경성 위장병 때문에 힘든 일이나 신경 쓰이는 일을 할 수가 없어 청소나 은행일, 가게 문 열어 주는 일 등을 했다. 말 그대로 ‘샷다맨’으로 지낸 것이다. 물론 잠깐씩 아이를 봐주고, 살림도 도와주었지만 그 세대를 살아온 남자들치고 집안일을 제대로 해온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눈만 뜨면 시장에 나가 하루 종일 장사를 하고, 밤이면 다섯 식구를 뒷바라지하는 고단한 삶의 연속이었지만 모두가 잠든 밤이면 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듯 배움에 대한 꿈을 남몰래 키워 나갔다. 그렇게 힘든 세월도 물처럼 흘렀다. 아이들은 커서 하나씩 자립해나갔고, 크게 잘살진 못해도 밥은 먹고 살 수 있는 정도가 됐다. 언제까지 돈 버는 일에 매달려야만 하는 회의를 느끼다 어느 날, 아무도 모르게 야간 검정고시학원에 학원비를 내버렸다. 가게문을 일찍 닫고 차를 두 번이나 갈아타는 길을 일주일에 세 번씩 공부하러 다녔다. ‘정말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30년 넘게 굳어 있던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며 중학교 기초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2년 만에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기쁨의 눈물이 차올랐고 가슴이 뻐근했다. 당장 집에 와서는 남편과 아들들에게 선언했다. 나 고등학교에 들어가겠다고. 그렇게 국민(초등)학교를 졸업한지 30여년 만에 나는 고등학생이 됐다. 교실 맨 뒤에 앉아 혼자 열심히 노트를 정리하는 나를 학생들은 신기한 듯 바라봤다. 나이는 이미 쉰을 넘었고, 이제 고3 수험생이 되어 대입수능에 도전하고 있다. 삼년 동안 공부했지만 아직도 수학이 큰 걸림돌이다. 영어 단어하나 외우기 위해 백 번을 써 보기도 하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려 몇 번을 좌절하기도 했다. 남편은 아침 먹기가 무섭게 교복을 챙겨입는 나를 어이없는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지만 이제는 ‘학교 늦는다’며 설거지 놔두고 어서가라고 떠민다. 만학도 고등학생. 내가 원해서 한 일이지만 공부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집안 대소사가 겹쳐 어쩔 수 없이 결석을 하기도 하고, 시도 때도 없이 졸음이 와서 꾸벅거릴 때도 많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그만 잡시다” 하며 빙그레 웃으시고, 질문을 할 때면 천천히 또박또박 가르쳐 주신다. 너무 힘들 때는 ‘왜 사서 고생을 하나’ 후회하는 맘이 들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얼마나 하고 싶던 공부였나, 얼마나 가고 싶던 학교던가’를 생각하니 발걸음이 저절로 가벼워진다. 딱히 뭐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다. 그저 공부가 하고 싶어 누구 눈치 보지 않고 실행에 옮겼다. 한 번 밖에 없는 인생 후회하지 않기 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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