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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조그만 손으로 아버지의 발을 맛사지 해준다며 주물럭거린 기억이 있다. 행복했던 그 시절, 내가 아버지 발을 작은 손으로 ‘톡 톡’ 두드리면 아빠는 ‘아이 시원해! 아이 간질어!’ 하며 어깨를 들썩거리며 웃었다. 그리곤 내 얼굴을 두 손으로 잡고 마구 흔들며 ‘요 기특한 것’ 하며 ‘쪽’ 소리 나게 입을 맞췄다. 작은 공장을 운영하던 아버지는 IMF가 터지던 해 부도가 났고, 내 사춘기는 빚쟁이의 악다구니와 엄마의 눈물 속에 엉망이 돼버렸다. 자존심이 강했던 아버지는 재기를 위해 몸부림쳤지만 끝내는 빚을 감당하지 못했고, ‘돈을 마련해오겠다’는 글을 남긴 채 집을 떠났다. 엄마와 동생을 잘 돌보라는 아버지의 글을 마주하던 고교시절, 눈앞이 캄캄했다. 세상이 두려웠고, 뭘 해서 먹고살아야 하는지 막막했다. 엄마는 밤 12시가 넘도록 식당에서 일하다 파김치가 되어서 돌아왔고, 나는 고등학교는 졸업해야한다는 엄마의 만류도 뿌리치고 알바든 퀵서비스든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겨우 입에 풀칠을 하면서도 엄마는 조금씩 빚을 갚아나갔고, 언제부턴가 아버지는 주소도 모르는 곳에서 약간의 돈을 보내왔다. 그리고 몇 년 뒤, 아버지가 교도소에 있다는 연락이 왔다. “네? 혹시 잘못 아신 게 아니에요?” 우린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도리질하며 교도소를 찾았다. 아무 말 없이 서 계신 아버지. 배곯는 조카를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치고 19년을 옥살이한 레미제라블의 모습이 그랬을까…. 나는 왠지 아버지를 미워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험한 사회생활을 하며 비열하게 사람을 착취하는 악인들이 너무나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도소 아버지학교’라는 프로그램에서 부모님의 발을 씻겨 드리는 세족식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좀 부담스러웠다. 이제 와서 아버지를 살갑게 대하기는 내가 너무 커버렸고, 가슴 한 켠에 원망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랴, 다른 가족들은 눈물을 흘리며 세수 대야에 손을 넣고 있었다. 그때 문득 어릴 적 아버지 발을 주물럭거리던 순간이 생각났다. 아!~, 한탄소리가 입 밖으로 새나오지 않도록 크게 숨을 쉬며 나는 천천히 세수대야에 담긴 따뜻한 물로 아버지의 발을 씻기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발…. 내가 기억하는 모습보다 훨씬 못생기고 거칠었다. 순간 울컥하며 눈물 한 방울이 아버지 다리위로 ‘뚝!’ 떨어졌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던 아버지도 눈자위를 붉히며 내 어깨를 잡았다. 그렇게 세족식이 끝나고 아버진 다시 차가운 감방으로 들어갔다. 이 추운 날 …, 돌아선 아버지의 등을 바라보니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최선을 다했지만 최악으로 돌아온 댓가에 속울음을 삼켰을 아버지. 핏줄의 서러움이 뜨겁게 목울대를 올라왔다. 이제 장남이란 이름의 밥값을 제대로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너무 힘들어 순간순간 죽고 싶었지만 살아야겠다. 부모님 모시고 정말 잘 살고 싶기 때문에. 춥기만 한 이 겨울도 봄을 품고 있듯이, 이루어질 것 같지 내 꿈 어딘가엔 반드시 열매가 숨어 있으리란 소망을 품어본다. 아버지가 따뜻한 집으로 돌아와 다시 재기할 수 있도록 열심히 뛰어야겠다는 결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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