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늦은 저녁,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한 할머니가 사과를 팔고 계셨다. 작은 바구니에 사과가 서너 개 담겼고, 종이에는 ‘삼천원’이라고 적혀있었다. 그런데 쳐다보는 사람이 없었다. 나라도 사 드려야할 것 같아 가까이 다가가니 사과가 조금 이상했다. 크기도 제각각이고 빛깔도 볼품없는데다 벌레까지 먹은 것 같았다. 살까말까를 망설이는데, 할머니는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이거 유기농 사과야, 자식들 주려고 농약 한 번도 안 쳤어! 그래서 벌레 먹은 거라고~!” 했다. 사과를 좋아하기도 하고 유기농이란 말에 두 봉지를 샀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사과 봉지를 열었다. 그런데 벌레 먹은 자리가 너무 커서 그냥 먹을 수가 없었다. 과도로 도려내자 사과는 절반도 안 남았다. 그때 친구가 어디서 벌레 먹은 사과를 사 왔느냐고 한 소리 했다. 왠지 화가 나서 “벌레가 아무 사과나 먹는 줄 아냐! 맛있는 사과만 먹는다구~! 하고 말했다. 순간 어릴 적 생각이 났다. 어머니는 먹성 좋은 나와 남동생 때문에 과일과 간식거리를 냉장고에 채워 넣느라 늘 분주했다. 사과를 특히 좋아한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사과부터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매일 좋은 사과를 먹을 만큼 넉넉한 형편이 아니어서 엄마는 늘 멍이 들거나 벌레 먹어 팔 수 없는 사과를 떨이로 사오셨다. 그러나 여기저기 흠이 난 사과는 깍다 보면 먹을 게 없었다. 결국 나는 “이런 가짜 사과 말고 진짜 사과 사줘!” 하고 투정을 부렸다. 그러자 엄마는 말했다. “벌레는 제일 맛있는 사과만 먹는단다. 그러니까 이 사과는 진짜 맛있는 거야~.” 그 뒤로 나는 벌레 먹은 사과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그 벌레 먹은 사과를 ‘엄마표 사과’라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에게서 산 사과는 꼭 속은 기분이 들긴 했지만 다른 사과보다는 달기는 했다. 부분 부분 도려낼 때마다 ‘노인네도 참~’하고 중얼거리긴 했지만 그런대로 맛있게 먹었다. 기스없는 사과가 아니어서 서운하긴 했지만, 그 벌레 먹은 사과농사를 짓느라 할머니는 얼마나 힘들었을 것이며, 뙤약볕에서 또 얼마나 종종걸음을 쳤을 것인가. 벌레먹은 부분을 파내며 깍느라 번거롭긴 했지만 오래간만에 ‘엄마표 사과’를 맛있게 먹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환해진 느낌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