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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편’ 이라고 하면 남다른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지 모르지만 사실 내가 책을 읽어준 것은 우연히 시작됐다. 엄청나게 금슬이 좋은 것도 아니며, 열정적으로 살 만큼 젊은 나이도 아니어서 그저 밥먹고 애들이나 챙기며 서로 데면데면 살고 있는데, 어느 날 아내가 갑자기 자리에 누웠다. 체구는 자그마하지만 몸져눕는 일이 없었는데, 그때는 정말 지독히도 앓았다. 더욱 고약했던 것은 엉망이 되어버린 얼굴이었다. 눈꺼풀 쪽이 부어올라 눈을 잘 뜨지 못했다. 아내가 꼼짝 못하고 눈을 감은 채 누워 있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보니 속으로 정말 겁이 났다. 집안일이 엉망이 된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고, 사춘기를 지난 아들들 뒷바라지도 장난이 아니었다. 물론 각기 알아서 생활은 했지만 머리만 큰 사내녀식들이 되다보니 “엄만 언제 퇴원해서 밥을 해줄 수 있을까?” 하며 밥걱정만 했다. 평소 살뜰한 남편은 아니었지만 남자가 중년에 아내를 잃는 것은 인생의 3대 불행 중에 속하는 게 아닌가. 무엇보다 아내가 없는 가정의 썰렁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생활이었다. 낮에는 간병인이 간호를 하고, 회사가 끝난 밤에는 내가 병실을 지켰다. 환자도 고생, 가족도 고생이었지만 그래도 제발 완치만 된다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한 달 뒤 아내는 퇴원을 했고, 당분간 장모님이 집안살림을 해주셨다. 그러나 연세가 있는지라 나는 되도록 일찍 퇴근해 집안을 치우고, 아들들에게 설거지를 시켰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 깨달은 나는 두 아들에게 각기 방청소와 설거지를 해놓으라고 엄포를 놓았다. 밤에는 눈이 부어 TV도 볼 수 없는 아내에게 뭔가를 해줄까 하다가 문득 책을 읽어 주겠다고 하니 아내가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 너무 뜻밖이었나 보다. 나 역시 말은 해놓고는 약간 어색한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책을 한권 빼들고 아내 옆에 앉았다. 책을 소리 내어 읽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속으론 책읽다 자야지 하며 첫 장을 넘겼는데, 조금 있다보니 아내가 자는 듯 눈을 감고 있었다. 눈 주위가 퉁퉁 붓고 포진까지 덕지덕지 나 있어서 쳐다보기가 민망할 정도였지만, 표정만은 더없이 행복해보였다. 안구대상포진으로 시력을 잃은 사람이 있다는 의사 말에 겁을 먹어 불안해하던 아내가 내 책 읽는 소리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편안하게 누워 있는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책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곤 소리 내어 책을 읽어주는 것이 괜찮냐고 물었다. 아내는 눈물이 핑 돈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책을 읽다보니 나역시 책 내용에 빠져 아내가 잠든 줄도 모르고 책을 읽었고, 그렇게 밤마다 책을 읽으니 효과가 두 배는 나는 것 같았다. 두 아들역시 방문을 열어보곤 아주 감동한 얼굴로 활짝 웃음을 지었고, 나 역시 그런 내 모습이 흐믓했다. 자식교육에 앞서 부모가 책을 읽으라는 말이 있는데, 평소 하지않던 일을 아내가 아프고 나서 실천을 하게 되니 세상에 다가온 고난도 좋은 일로 바꾸는 일은 각자의 노력에 달린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병마를 이겨낸 아내는 가끔씩 책을 읽어달라고 조르고, 함께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책을 고르니 자녀교육에 부부의 정나누기에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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