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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나는 여름이 싫었다. 다른 친구들은 알록달록한 샌들을 신고 다니는데 난 푹푹 찌는 날에도 헌 운동화만 끌고 다녀야 했다. 할머니와 동생이랑 셋이만 살던 그 어렵던 시절, 할머니는 신발을 살 때마다 으레 "샌들은 여름밖에 못 신는데다 금방 떨어져서 못쓴다. 그저 오래오래 신을 수 있는 운동화가 제일이지" 하시며 못생기고 튼튼한 운동화만을 사주셨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나는 샌들이 신고싶은 간절함에 꾀를 냈다. 할머니 몰래 운동화 밑창을 칼로 찢어놓은 것이다. 그러나 다음날 할머니는 "오늘은 죽었다 깨도 돈이 없다. 그냥 이거라도 신고 가라" 맙소사! 그건 다름 아닌 검정고무신이었다. "할머니, 어떻게 이걸 신고 학교에 가요~" 나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비참함에 이십 분이나 실랑이를 벌였지만 결국 눈물을 머금고 그 검정고무신을 신어야 했다. 밑창이 너덜거리는 운동화를 신느니 차라리 고무신을 신고가는 게 더 낫겠다 싶어서였다. 혹 떼려다 혹 붙인 꼴이었다. 혹여 친구들이 볼세라 늦게늦게 등교한 나는 고무신을 신발장 깊숙이 밀어넣었다. 그날 하루만 무사히 넘어가길 바라면서. 그런데 결국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야, 이 조선나이키 누구 거냐?˝ 반에서 말썽대장으로 소문난 녀석이 내 고무신을 들고 황소개구리처럼 웃어대는 통에 나는 딱 죽고만 싶었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들렸고, 반 애들이 온통 내 얼굴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 그렇잖아도 며칠 전 학부모 상담시간 아무도 오지 않아 주눅들어 있던 참이었다. 나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눈물이 맺혔다. 그때 마침 교실 문을 들어서던 담임선생님이 보셨던 모양이다. 선생님은 검정고무신을 들고 날 놀린 녀석을 호되게 나무라셨다. 마침내 수업이 끝나고 나는 반 아이들이 다 갈 때까지 앉아있을 작정이었다. 아이들이 보는데서 검정고무신을 신기가 너무나 창피스러웠던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선생님이 내 책상 옆으로 오셨다. 나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푹 떨구고 있는데 선생님이 이렇게 말하셨다. “선생님도 오늘 검정고무신 신고 왔는데….” 나는 깜짝 놀라 선생님 얼굴은 바라보다 얼른 발을 보았다. 말쑥한 정장차림에 검정고무신을 신고 있는게 아닌가. 그 모습이 너무 우스워서 나는 그만 ‘풋’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선생님은 나와 함께 교문을 나서며 “고무신은 참 편해~” 하며 내손을 잡아주셨다. 그러나 선생님은 모르셨을 거다. 선생님 가방 뒤로 숨겨져 있던 구두를 내가 보았다는 사실을. 이제 어른이 되어 그런 콤플렉스는 다 벗어났다. 그러나 그때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셨던 선생님을 만나면 정식으로 한번 물어볼 작정이다. 그날 대체 어디서 검정고무신을 구하셨느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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