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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 남편이 선을 보는 자리에서 “나는 술을 사랑합니다” 라고 말했을 때 나는 ‘참 솔직한 사람이로구나’하고 단순하게 생각을 했다. 오히려 술은 입에 대지도 못하고 고지식하기만 한 친정아버지 때문에(?) ‘남자는 술을 좀 해야…’ 하고 시건방진 생각까지 했던 것이다. 그러나 결혼 후 남편의 술버릇은 장난이 아니었다. 웬 모임은 그리도 많은지. 옛날에 통행금지가 있을 때는 밤 열두 시만 지나면 포기하고 아예 잠을 자버렸는데 이제는 새벽까지 안심하고 잠을 잘 수가 없으니 사람 환장할 노릇이었다. 물론 착한 성격에 월급은 꼬박꼬박 잘 갖다 주고, 아이들에게 잘하고 술 취했어도 집에 오기만하면 내 잔소리에 대꾸도 없이 침대로 꺼꾸러지는 통에 이튿날이면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살아오긴 했지만. 그러나 사십대를 넘기고부터 남편의 건강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술마시는 남편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술 취해 늦게 들어오느니 차라리 자고 들어오라”고 퍼부었는데, 언제부턴가 늦었으니 그냥 자라며 아예 외박을 해버리는 게 아닌가. 어디서 있었노라고 확실한 알리바이를 대기도 하지만 나이가 드니 이젠 ‘어디서 잤을까’하는 의심을 갖기도 귀찮았다. 아이들이 크고 일찍 남편이 집에 들어와 봐야 별 할 얘기도 없고, 그렇다고 자상하게 집안일을 챙기는 편도 아니고, 경제권은 이미 내가 쥐고 있으니 남편이 안들어오는 날은 차라리 편하기까지 했다. 친구들과 여행도 가고, 노래교실에서 신나게 스트레스도 풀고, 때로 자원봉사도 나가고. 꼭 직장이 없어도 나름대로 바쁜 나날이었다. 신혼 때처럼 남편을 기다리거나 의지하지 않아도 되는 중년여성의 삶은 그런대로 재미있고 살아볼 만한 나날이 아닌가. 그러나 외박을 해도 무덤덤한 내게 서운함을 표한 사람은 오히려 남편이었다. 믿는 사람은 마누라 뿐인데 너무 관심이 없다나 어쨋다나. 젊은 날 아이 키우고 시동생들 뒷바라지 하느라 외출한번 제대로 못해본 나는 막내가 대학기숙사로 들어가자마자 주어진 시간에 배우고 싶은 것 배우고,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워 새롭게 태어난 느낌이었다. 비로서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남편이 술에 취해 들어와도 그러려니 하고 이해하고 말았다. 남편 말마따나 “사회가 술마시게 만든다”니 내가 어떻해 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저 알아서하려니 하고 넘어갔더니 나도 편하고 남편스스로도 건강을 생각해 절제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간밤에 남편이 친구들과 바둑모임이 있으니 그냥 자라고 해 짜증을 낸 뒤 혼자 잠이 들었다. 요즘 새로 배우기 시작한 수지침이 재미있어 늦게까지 책을 읽다 잠이 든 탓에 이튿날 오전 9시가 넘어서야 눈을 떳는데, 전화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아무개씨 댁이죠? 아무개씨가 00병원 응급실에 계십니다." 숨가쁘게 자기 할 말만 하고 끊어진 전화기를 한참이나 멍청히 들고 있다가 문득 제 정신이 들어 허겁지겁 집을 나섰다. 이럴 때는 택시도 잡기 어렵다. 거의 울음섞인 목소리로 00병원을 외쳐 합승을 시도했지만 그것마저 여의롭지 않다. 빌어먹을! 어찌어찌해 택시는 탔으나 괜히 불경스러운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죽음, 상처입은 육신, 어젯밤 외박을 한다기에 퍼부어댄 욕설이 가슴을 쳤다. 그리고 웬일인지 애들 얼굴이 떠올랐다. ‘안돼, 죽어서는 안돼, 불구가 되더라도 살아야만 돼,’ 왜 그렇게 신호등은 많은지, 그리고 쓸데없는 차들은 많은지. 벌떡거리는 가슴은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런 분 안 오셨는데요" "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우리 병원에 응급환자는 없었습니다." 틀림없이 00병원인데 내가 경황없어 잘못 들었나,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허겁지겁 남편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예 김아무개 입니다….” 귀청을 울리는 목소리에 그만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여보, 당신이야, 오늘은 벌금가지고 일찍 갈께" 한참 만에 일어선 나는 절로 고개가 흔들어졌다. ‘웬수, 웬수 으이! 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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