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내가 아니다. 아내 앞에서 나는 나를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아내의 남편이다. 명세서만 적힌 돈 없는 월급봉투를 아내에게 내밀며 내 능력 부족으로 당신을 고생시킨다고 말하고, 겸연쩍어하는 아내의 무능한 남편이다. 세 아이의 엄마로 힘들어하는 아내의 가사 일을 도우며 내 피곤함을 감춘다. 그래도 함께 살아 주는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나는 아내의 말을 잘 듣는 착한 남편이다. 아이들 앞에서 나는 나를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세 아이의 아빠다. 요것조것 조잘대는 막내의 물음에 만사를 제쳐 놓고 대답부터 해야 하고 이제는 중학생이 된 큰 놈들 때문에 뉴스 볼륨도 숨죽이며 들어야 한다. 막내의 눈높이에 맞춰 놀이동산도 가고, 큰 놈들 학교 수행 평가를 위해 자료도 찾고, 답사도 가야한다. 내 늘어진 어깨에 매달린 아이들 유치원비, 학원비가 나를 옥죄어 와서 교복도 얻어 입히며 외식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생일날 케이크 하나 챙겨 주지 못하고, 초코파이에 쓰다만 초에 촛불을 켜고 박수만 크게 치는 아빠. 어머니 앞에서 나는 나를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불효자식이다. 가까이 모시지도 못하고 생활비도 제대로 못 부쳐 드리는 자식이다. 그 옛날 기름진 텃밭이 무성한 잡초 밭으로 변해 기력 쇠하신 당신 모습을 느끼면서도 주말에 한 번 찾아뵙는 것도 가족 눈치 먼저 살펴야 하는 나는, 당신 얼굴 주름살만 늘게 하는 어머니의 못난 아들이다. 나는 나를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사십 대 직장(중견) 노동자다. 월급 받고 사는 죄목으로 마음에도 없는 상사의 비위를 맞추며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도 삼켜야 한다. 정의에 분노하는 젊은이들 감싸안지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고개 끄덕이다가 고래 싸움에 내 작은 새우등 터질까 염려하며 목소리 낮추고 움츠리며 사는 고개 숙인 남자. 집에서는 직장 일을 걱정하고, 직장에서는 가족 일을 염려하며 어느 하나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엉거주춤한 모습. 마이너스 통장은 한계로 치닫고, 월급날은 저만큼 먼데 돈 쓸 곳은 늘어만 간다. 포장마차 속에서 한 잔 술을 걸치다가 뒤 호주머니 카드만 많은 지갑 속의 없는 돈을 헤아린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껴안을 수 없는 무능력한 사람이어도, 그래도 가족이 있어 행복하다. 그걸 모른다면 인간이 아니리라.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마쓰시다 고노스게씨는 자신에게 하늘이 준 3가지 은혜가 있다고 말했다. 첫째,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부지런히 일해야 살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달았고, 둘째, 약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건강의 소중함을 깨달아 90세 까지 살 수 있었으며, 셋째,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스승으로 삼았던 것이 자신의 성공비결이라고 했다. 고유가 시대, 모두가 촛불집회 현장으로 달려가도 나는 내일 출근할 일, 혹시 욱 하는 마음에 실수라도 하면 자식들 앞일은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그냥 집에서 TV 리모컨만 돌리는 소심한 남자다. 부모는 모시고 싶은데 형편은 어렵고 커가는 자식들의 뒷바라지는 버겁지만 나 역시 오늘의 어려움이 영원하리라곤 생각지 않는다. 우리가 겪는 고통과 어려움의 시간들이 시련의 시간이라면 이것이 곧 성공을 위한 축복의 시간도 되리라고 믿으며 다시금 발을 내딛는다. 내일은 오늘보다는 나으리라고 기대하면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