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느 비 오던 밤이었다. 밤 12시가 다되어 막 잠자리에 들려는데 누군가 벨을 눌렀다. 남편도 야간근무를 나가 올 사람이 없는데 누굴까? 인터폰으로 밖을 내다보던 나는 깜짝 놀랐다. 고개를 푹 숙인 오빠가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문 쪽을 기댄 채 서있었다. 급히 현관문은 열었다. “웬일이유 오빠?~” 눈이 동그래진 채 멍하니 바라보자 오빠는 참으로 쑥스럽고 게면쩍은 얼굴로 픽 웃으며 현관을 들어와 식탁 의자에 푹 쓰러지듯 앉았다. “애들은 자지?, 매제는 일 나갔을거고….” 누구에게 하는 소린지도 모르게 중얼거리더니 불쑥 고개를 들고 말했다. “경숙아 나 라면하나 끓여줄래? 신김치 좀 넣고 말야.” 오빠는 술에 취한 듯 했으나 눈빛은 또렷해 보였다.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가만히 오빠를 바라보며 “언니랑 무슨 일 있었수? 밤늦게 집에 안가고 몇 년 만에 동생 집을 다찾게” 하고 물었다. 오빠는 말없이 씁쓸하게 웃었다. 서둘러 냄비를 올린 뒤 신김치 썰어 넣고 물이 끓기를 기다렸다. 고개를 푹 숙인 오빠의 뒷모습이 보니 그동안의 서운했던 마음은 다 사라지고 눈물이 핑 돌았다. 그토록 자랑스러웠던 오빠, 사법고시에 패스해 시골 동네에 떠들썩하니 프랭카드를 걸어 부모님 얼굴에 함박웃음을 짓게 했던 오빠. 그로인해 희생했던 내 인생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모든 고통은 다 사라지고 행복만 가득할 것 같았던 순간이었으니까…. 3남매 중 맏이인 오빠는 지지리 가난했던 우리집안의 기둥이자 희망이었다. 오빠를 사이에 둔 언니와 나는 일찌감치 학교문턱을 파한 채 공장에 들어갔다. 남의 땅에 농사지어 겨우 건진 부모님 돈과 우리의 노동비는 모두 오빠학비로 들어갔다. 그래도 언니는 일찌감치 공장반장과 눈이 맞아 결혼해 나갔고, 나는 오빠의 뒷바라지를 위해 서울서 같이 자취하며 오빠는 대학을, 나는 공장을 다녔다. 가난했던 그 시절 오빠와 내가 곧잘 먹던 음식이 바로 신김치 털어넣고 끓인 라면이다. 좀 산다는 집안 딸인 새언니는 좀처럼 집안일에 얼굴을 내놓지 않았다. 그리고 오빠도 바쁘다는 말로 행사를 대신했다. 세월이 흘러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나는 착하기만 한 남자를 만나 뒤늦게 결혼했다. 오빠네와 우리는 신분의 차이가 나는 사이가 돼버려 만나면 오히려 불편하기만 했다. 그런데 몇 년 만에 뜬금없이 오빠가 온 것이다. 그리곤 그 싸빠진 라면을 너무나 맛있게 먹었다. 국물까지 다 둘러 마신 오빠는 그제서야 고개를 들고는 “경숙아, 이 라면 정말 먹고싶었다 정말….” 하며 말끝을 흐렸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왜 그 순간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오빠 역시 눈시울을 붉힌 채 한참 만에 일어섰다. 그리곤 가만히 내손을 잡으며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는 말을 혼잣말처럼 되풀이 했다. 나는 빗속으로 비틀거리며 멀어져가는 오빠의 뒷모습을 텅 빈 마음으로 바라보며 서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