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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3살 때, 나는 아이를 데리고 재혼을 했다. 물론 요즘 같은 세상에 이혼이나 재혼이 크게 흉이 되지는 않겠지만 20년 전에는 주위의 시선이 그리 곱지는 않았다. 그러나 남편의 5살짜리 아들에겐 내가 좋은 엄마가 되어주고, 내 딸에겐 멋진 아빠가 되어주겠다던 그 순진했던 약속을 믿고 나는 애들에게 좋은 가정을 만들어주겠다는 일념으로 재혼을 했다. 그러나 행복은 잠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데 남편이 벌어주는 돈만 바라보며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처녀 때부터 하던 택시운전을 시작했다. 살림은 시어머니가 맡았고, 자연히 딸애도 시어머니가 키워주셨다.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격일제 근무라 늘 피곤한 나머지 쉬는 날은 새벽에 교대하고 들어와서 늦게까지 잠을 자야했다. 오후에 일어나 보면 딸애는 엄마를 깨우지도 않고 엄마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리며 머리맡을 지키고 앉아있었다. 어느 날, 내가 일찍 집으로 들어가자 딸애가 시어머니 서랍장을 가리키며 “엄마, 저 속에 있는 사탕이 먹고싶어요, 할머니는 오빠만 사탕주고 나는 안줘…”하는 것이었다. 그제야 나는 시어머니가 딸애를 냉대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막혀왔다. 그렇다고 시어머니에게 대놓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 부지런히 돈을 벌어 분가해야겠다는 결심만 했다. 또 어느 날은 집에 들어섰더니 애가 울먹이면서도 차마 울지는 못하고 억지로 울음을 참는 표정이었다. 할머니한테 또 혼났나보다 생각하며 끓어오르는 마음을 억누르고 있는데, 시어머니가 "이건 잘 놀다가도 지 엄마만 보면 칭얼대~" 하고 나무라셨다. 그 시절만 해도 시어머니에게 대든다는 것은 큰 죄를 짓는 것처럼 여겨져 “어머니 애들이 다 그렇죠 뭐~” 하며 폭발하려는 감정을 눌렀다. 그렇게 참고 또 참으며 몇 년이 흘렀다. 딸애가 7살이 되던 해였다. 아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방바닥에 ‘툭’ 던지고 다른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을 본 남편이 화를 버럭내면서 제자리에 갖다놓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딸애가 무서워하며 얼른 내게 안기자 남편은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다며 빗자루를 가지고 와서는 딸애의 종아리를 몇 대 때리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억눌렀던 마음이 폭발하고 말았다. “애가 장난감을 제자리에 잘 갖다놓으면 어디 어린애냐! 내 딸 교육은 내가 시킬테니 상관 마!” 하고 소리를 질렀다. 물론 남편도 아이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겠다고 그랬을 수도 있고, 친 아빠였으면 내가 그렇게 폭발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피가 섞이지 않았다는 것이 그토록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 오해는 평생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도 남편의 아들 때문에, 그리고 내 딸 때문에 우리는 수없이 다투며 결혼생활을 이어가다 결국은 아이들 사춘기 시절에 미련 없이 갈라섰다. 지금 딸애 나이 20대. 친구 같고 때론 든든한 언니 같다. 부유하진 않지만 딸과 둘이서만 오붓하게 사는 생활. 딸애의 우울했던 얼굴에 생기가 돌아 왔고, 나 역시 한없이 마음이 편하다. 물론 더 깊이 생각했어야 될 일이었는지, 섣부른 결정이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마음고생이 컷을 딸애를 생각하니 백번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법정스님이 쓰신 글에 이런 문장이 있다. ‘인생에서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은 큰 인연이다. 좋은 사람을 찾으라, 그러나 인생의 도반을 만나지 못했을 때 헛되이 찾아 헤매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홀로가라!…’ 홀로 사는 가구가 늘어나는데는 나름 그 이유가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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