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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생각에 속절없이 나이만 먹다가 부모의 강요에 못이겨 어찌어찌 결혼을 했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본 그 멋진 왕자님과의 결혼은 말 그대로 환상에 불과했고, 우리는 결혼자금을 모두 모아 겨우 전세아파트 한 칸을 얻어 살림을 차렸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알아갈 시간도 없이 주위사람들에게 등 떠밀려 결혼한 우리는 신혼 초, 서로가 기선을 잡으려는 듯 열심히 싸웠다. 그리고 결혼생활 자체가 지겨워 ‘이혼’이란 단어를 떠올릴 때쯤 놀랍게도 아이가 생겼다.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커가는 아이를 바라보며 비로소 우리는 부부싸움을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차츰 자식 키우는 재미에 빠져 치열했던 싸움을 잊어갔다. 자식은 결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 부모를 통해 세상에 보내는 ‘신의 생명’일 뿐이라는 ‘칼릴 지브란’의 말이 있다. 그러나 어찌 신의 생명일 뿐이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란 말을 실감하며 아이 둘을 곱게 키웠다. 그러나 ‘품안에 자식’이란 말처럼 아이가 사춘기를 지나자 때로는 부모의 간섭을 거부했고, 부모보다 친구 따라다니기 바빠서 곧잘 우리를 서운케 했다. 그래도 자식의 성공이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보통의 한국사람인 우리 부부는 자식에 대한 기대치가 달라 자식 교육을 두고 새로운 부부싸움이 벌어졌다. 어느 학원을 보낼 것인지, 캠프는 보낼 것인지, 선생님께 사례를 해야하나 등. 서로가 다른 환경에서 30년을 넘게 살았으니 가치관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 번번이 트러블이 생겼다. 더구나 부부가 15년을 넘게 살다보면 권태가 올 때도 됐지 않은가. 중년의 부부싸움은 그래서 더욱 치사하고 맹렬해지기도 했다. 허전해진 마음을 달랠 길 없어 어느 날 문화센터를 찾았다. 그리고 ‘한참 사춘기에 든 아이들 앞에서 부부싸움을 자주 벌이면 아이들은 인생 자체에 대해 불만을 갖게 되고, 미래에 대한 확신을 잃으며, 정상적인 결혼에 대해서도 회의하게 된다’는 강의를 들었다. 또 ‘부부싸움에 있어 상대가 변하길 바라지 말라. 남자란 나이 들었다고 철드는 건 아니다. 여성이 행복을 찾고자 할 때는 먼저 자신이 변하지 않으면 행복은 영원히 자기 것이 되지 않는다’는 노 교수의 말을 들었다. 작은 깨달음이 왔다. 내 행복을 찾기 위해 자식에겐 격려를, 남편에겐 자유를 주며 자신을 변화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리고 용기를 내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제 우리 싸움은 그만합시다. 짧은 인생 싸움으로 보내긴 너무 억울하잖우’라고. 그러나 답이 없었다. ‘못봤나?’ 자존심이 상해 다시 물어보지도 못한 채 속앓이만 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학원을 간다던 녀석이 딴 곳에서 놀다온 것 같았다. 화가 났지만 문화센터에서 배운 대로 꾹 참았다. ‘호되게 야단을 치는 게 옳은지, 아니면 모른 척 속아주며 스스로 잘하기를 기다리는 게 바른 교육인지’ 혼자 속을 끓이며 고민하다 저녁에 돌아온 남편에게 슬며시 말을 건넸다. “저 녀석을 어떻게 교육 시켜야하지?”. 아무 말없이 한참을 미적거리던 남편이 가만히 일어나더니 거실 화병에서 꽃 한송이를 빼들었다. 그리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게 건네는 게 아닌가. 우습기도 하고 쑥스러워서 어색하게 남편을 바라보는데, “여사님! 기다립시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1순위가 자식이라네. 그리고 그렇게 마음대로 안되는 게 바로 인생이라는구만. 스님이 말씀하시더라구. 부부가 열심히 화목하게 살면 자식은 결코 딴 길로 새지 않는다고…” 남편 역시 고민을 안고 절을 찾았던 모양이다. 순간 나는 남편에게 말할 수 없는 동질감을 느꼈고, 남편 역시 가만히 나를 껴안았다. “우린 동지잖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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