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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비오는 토요일, 12살 아들과 함께 '베스트 키즈‘라는 TV영화를 봤다. 흑인 싱글맘이 일거리를 찾아 미국에서 중국으로 이주했지만 아들이 중국애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하면서 쿵푸를 배우게 되고, 대회까지 나가며 삶을 헤쳐나가는 줄거리다. 내용은 청소년 영화답게 권선징악과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뻔한 스토리였지만 나름 감동적이었다. 주인공 또래의 자식을 키우고 있기에 왕따를 당한 흑인 청소년이 힘든 상황을 어떻게 비켜가는지가 궁금했다. 아들역시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시종일관 TV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는 “나도 쿵푸 배워볼까?” 하고 중얼거렸다. “니가 시간이 있겠니? 저건 그냥 영화야~” 하고 대답했지만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폭력을 생각하니 아들에게 ‘태권도라도 배우라고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눈뜨기가 무섭게 학교로 향하는 아들은 학교에서 학원으로 뺑뺑이를 돌다 밤이 되어서야 겨우 얼굴을 보게 된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아이가 말 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고, 그렇다고 시시콜콜 낮에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지도 않는다. 열심히 돈을 벌어 자식들 뒷바라지 하는 것이 옳은 길이라 믿으며 아등바등 살지만 정작 아이가 학교에서 폭력에 떨고 왕따에 고통을 당한다면 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더구나 엄마의 정보력과 할아버지의 경제력이 아이의 성적을 좌우한다느니, ‘대치동 엄마들의 학습법’이니 하는 말들은 평범한 학부모들을 또 얼마나 기죽이는가. 그런 말에 휘둘렸다간 영원히 평온을 찾지 못하리라. 그러나 모든 조건을 갖췄다 해도 자식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누군가 1등을 하면 누군가는 꼴찌를 해야 한다. 누구나 내 자식이 1등이 되기를 원하지만 중요한 것은 1등이 아니라 내 자식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영화를 보고나니 새삼 아들의 행동을 유심히 보게 됐다. ‘혹시 저 녀석도 왕따를?’ 하는 의심을 해보기도 하고, 영화 속 주인공처럼 단단하지도 의지가 강하지도 못한 모습이 불안하기도 하다. 나도 모르게 걱정이 돼서 어느 날 “여기 근처에 쿵푸 가르치는 도장이 있디?” 하고 물었더니 아들이 ‘풋’하고 웃었다. 그리곤 “이제야 엄마가 뭔가를 느끼시는 모양이군요~”하고 놀려대며 “내 친구들은 괜찮으니 걱정마세요. 그렇지만 난 그런 호신술보다 야구가 하고싶어요. 야구부에 들어가도 되죠?”하며 묻는다. 공부할 시간 없다고, 운동부는 안된다고 일찍부터 말렸지만 왠지 지금은 반대할 구실이 없어진 기분이다. 호기롭게 ‘야구? 네가 행복해진다면 그래 해라!’ 이렇게 말해야 하는데, 나는 비겁하게도 아직 확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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