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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할머니가 안 될 줄 알았다. 할머니는 어머니나 고모님 같은 분들만 할머니가 되는 줄 알았다. 그렇지만 이렇게 할머니가 됐고, 그건 마냥 서운한 것만은 아니란다….” 손자를 봐주고 아이들 재롱과 커가는 것을 보며 생성과 소멸의 순리를 깨쳤다는 엄마가 어느 날 철학자 같은 말을 했다. “엄만~ 아직 하나도 할머니 같지 않아. 우리 준이 데리고 나가면 늦둥이냐고 묻는다면서? 아직 한창 젊은데 무슨 그런 쓸쓸한 말을 하우~”.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면서도 어쩔 수 없이 뻔뻔해진 나는 그렇게 알량하게 엄마를 위로했다. 친정엄마에게 아이를 맡긴 워킹맘인 나는 엄마의 노고보다는 늘 내 입장에서 생각한다. 허리 아프고 다리도 아프다는 엄마 말을 귓등으로 흘렸다. 아프다고 아이를 못 봐준다고 할까봐 그걸 더 겁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큰애에 이어 둘째 준이까지 봐준 뒤로 50대 후반의 엄마가 급속히 힘이 빠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어깨가 아프다고 병원을 들락거리더니 곧이어 허리사진을 찍으러 다녔고, 무릎이 시큰거린다고 했다. 아이들 재롱에 한없이 미소가 번지면서도 문득문득 허무함을 감추지 못했다. 딸은 다 도둑이라더니, 엄마의 병이 깊어가도 나는 내 자식 안위만 생각하며 ‘아이가 조금만 더 클 때까지…’하며 버텼다. 그러던 어느 날, 직장에서 ‘후반기 인생준비’라는 특강이 있었다. 초빙돼온 강사는 워킴맘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엄마가 젊어 보인다 해서 영원히 곁에 있어 주리라 생각지 마세요. 얼굴은 화장으로 감출 수 있지만 몸은 그 나이 그대로 늙어간답니다. 엄마도 아름답고 우아하고 싶은 여자에요. 자식이란 십자가 앞에 끝까지 희생을 감수하고 있을 뿐이지요….” 문득 엄마의 그 쓸쓸했던 얼굴이 떠올라 콧등이 시큰해졌다. 그리고 ‘더 이상은 안돼!’.하는 양심의 소리에 가슴이 시렸다. 주먹을 불끈 쥐며 일을 마친 나는 그날 사방으로 아이를 맡길 곳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친정에서 아이를 데려오며 말했다. “엄마, 이제 엄마 건강만 생각하고 하고 싶은 일 하며 사세요. 자식걱정 하지 말고.” 안된다고 할 줄 알았던 엄마가 뜻밖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프니까 아무 것도 소용이 없구나. 아무 의욕도 안 생겨. 다시 기운을 차리고 씩씩한 사람이 되고 싶다. 초고령화 사회가 된다는 말들은 아무런 위로도 위안도 안되는 뉴스들이지. 우린 개개인이 그저 늙어갈 뿐이니까. 너도 자식에게 모든 것을 걸지는 마라. 인생은 한번 뿐이니까. 그렇지만 맑은 물 흙탕물을 다 받아들여서 바다가 된다는 구나. 엄마 이제 바다를 보러가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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