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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 뚜벅 뚜벅…. 어린 시절 단독주택에 살 때, 퇴근시간 무렵이면 경쾌한 아버지의 구두소리가 문밖 가까이에서 들렸다. 그러면 우리 형제들은 싸아한 바람 냄새와 함께 들어서는 아버지를 보며 “다녀오셨어요”라고 인사했고, 엄마와 동생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물론 그런 분위기는 아버지가 만든 분위기였고, 때로 아버지 손에 우리가 좋아하는 과자가 들려있던 날은 ‘와~’하는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 봉지를 받으려고 머리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 시절을 지나 사춘기 청소년이 됐고, 우리는 아버지의 구두소리가 들렸던 그 단독주택을 떠나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리고 이어 IMF가 터졌다. 아버지의 그 경쾌했던 구두소리 대신 아버진 만취상태로 비틀거리며 현관을 들어섰다. 한창 예민했던 그 시절, 아버지의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나는 한없이 우울한 청춘으로 변해갔다. 아버지의 폭음은 날마다 이어져 인사불성이 된 아버지를 모셔가라는 전화도 수없이 받았다. 그때마다 엄마와 나는 여기저기, 술집에서 쓰러진 아버지를 양쪽으로 부축해 집으로 모셔오는 일이 다반사였고, 그때마다 죽고싶을 만큼 비참했다. 이어지는 부모님의 말다툼, 그럴 때마다 여지없이 올라가던 아버지의 손바닥. 엄마는 서럽게 흐느꼈고, 나 역시 가슴에 뜨거운 것이 치밀어 어디로든지 확 떠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내가 죽지 못해 학교를 다니는 사이, 엄마가 미용학원을 나가셨다. 그리고 자격증을 딴 뒤 동네 미용실을 개업했다. 그곳은 방 2칸에 조그만 부엌이 딸린 아주 작은 곳이었다. 미용실 뒤 골방에 처박혀 지낸 아버지는 손님이 북적대는 틈을 타 미용실을 빠져나간 뒤 술에 취해 돌아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비틀거리며 들어서다 엄마가 있는 쪽으로 넘어지는 바람에 엄마가 바닥에 미끄러져 무릎인대가 끊어지고 말았다. 수술 후 석 달 간 병원에 누워있던 엄마는 그 뒤 모든 표정을 잃어버린 채 멍하니 누워있었다. 몸의 상처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깊었으리라. 내가 병원에서 병간호를 하는 날에도 아버진 몇 일 씩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회의를 느꼈고, 뭘 하시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그러나 엄마가 퇴원해서 집에 돌아오던 날이었다. 집안을 들어서는데, 미용실은 말끔히 청소돼 있었고, 작은 방에는 미역국과 함께 소박한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어?” 놀란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는데, 앞치마를 두른 아버지가 쑥스러운 듯 웃으며 나오셨다. 술을 끊은 아버지, 재기를 위해 이를 악물고 자신과 싸운 아버지의 모습이 거기 서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어린 시절 그 경쾌했던 아버지의 구두소리가 되살아났다. “짜식, 남자는 열 번 되는거야!” 멍하니 선 내 어깨를 ‘툭’ 치며 아버지가 날린 그 한마디. 나는 사람의 인생이란 언제든 뒤집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쨍’하니 가슴 벅차게 깨달은 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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