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결혼하기 전인 아가씨 시절, 가고 싶은 대학은 못가고 돈을 버느라 서울에 있는 이모 집에 얹혀 살 때의 일이다. 누런 금 시세가 지금보다는 그나마 저렴해 동네 아줌마들과 반지 계를 했다. 명절에 맞춰 월급을 받은 나는 엄마에게 금반지를 해드리기 위해 금은방에 갔다. 그런데 엄마 손가락 치수를 몰라 망설이자 같이 간 이모가 “금은 아무 금은방에 가도 늘려준다”고 해서 대강 짐작으로 서돈짜리 쌍가락지를 맞췄다. 명절이 되자 나는 번쩍번쩍 빛나는 그 금반지를 들고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갔다. 그리고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엄마~” 하고 불렀다. 환하게 맞아주는 엄마에게 분홍빛 상자를 싹 내밀자 엄마는 두 눈을 번쩍 뜨며 “오메! 이것이 뭐여? 금반지 아녀.” 하고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너무나 가난했던 시절, 당시 엄마만 빼고 동네 아줌마 누구라도 끼고 다니던 금반지였지만 그날만큼은 내가 해준 엄마의 반지가 제일 반짝였다. 엄마는 도시에서 해온 거라 무늬도 세련됐다며 매우 좋아하셨지만 그동안 온갖 고생으로 손마디가 굵어져 눈짐작으로 맞춘 반지는 잘 들어가지 않았다. “엄마, 읍내 금은방 가면 늘릴 수 있으니까 내일 나랑 가자.” 엄마는 잘 들어가지도 않는 반지를 연신 손가락에 넣어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날 밤 잠이 들었던 나는 부스럭 소리에 잠을 깼다. 그런데 어둠 속에 가만히 앉아있던 엄마는 거칠어진 손마디에 침을 발라가며 금반지를 끼워보고 있었다. 그리곤 다 들어가지 않는 반지를 바라보며 ‘제대로 못 먹이고 못 입혀 키운 내 딸이 사온 반지를 내가 어찌 끼고 다닐꼬……’ 하며 중얼거렸다. 이튿날 읍내에서 반지를 늘려드렸지만 엄마는 그 뒤로도 행여 반지가 닳을까 봐, 잃어버릴까 봐 못 끼시고 언제나 속옷에 실로 묶어 매달고 다녔다. 내가 그렇게 끼고 다니라고 잔소리를 해댔지만 엄마는 “보는 것만으로도 좋아야~” 하고 웃으셨다. 그런데 그렇게 몇 번 껴보지도 못한 엄마의 반지는 내가 철없이 일을 저질러 이른 결혼을 했을 때, 미련 없이 녹여서 사위 손에 끼워주셨다. 그때 엄마는 지금의 나보다 몇 살 많지도 않은 나이였는데 왜 그리 손이 거칠었는지, 왜 그리 주름살은 깊었는지…, 생각할수록 눈물이 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