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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것 없이 숟가락 두 개로 신접살림을 시작한 우리 부부는 ‘사랑’이라는 믿음 하나로 보석처럼 예쁜 딸 둘을 안고 행복하게 살았다. 의류제조 회사에서 재단사로 잔뼈가 굵은 나는 친지들에게 빚을 얻어 30대 후반에 조그만 의류공장을 차렸다. 열심히 일한 덕에 제법 수출도 하면서 회사는 순탄하게 커갔다. ‘사장님’ 소리를 들으며 탄탄가도를 달리던 중 IMF가 터졌고, 그 소용돌이에 휘말려 사채를 쓰게 되었다. 날마다 사채업자에 시달렸고,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버틸 때까지 버텼지만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 결국 피눈물을 흘리며 공장을 넘겼다. 그리고 어두컴컴하고 냄새나는 지하 단칸방으로 나앉았다. 비참한 현실 앞에 나는 좌절했고, 분노로 인해 누군가를 죽이고 싶었다. 차츰 알콜중독자가 되어갔고, 자살을 생각했다. 때로는 부모까지 원망해가며 내 인생을 탕진했다. 그래도 아내는 나를 위로했다. “이게 어디 당신만의 잘못이에요, 용기를 내서 보란 듯이 일어서요, 난 괜찮으니 아이들을 봐서라도 힘을 내야 되잖아요.” 그동안 거래처 사람들과 좋은 곳도 다니고 어깨 힘주며 살 땐 몰랐다. 그러나 사업이 망하고 보니 정말 믿을 사람은 아내밖에 없었다. 자칫 남들처럼 노숙자로 전락할 수도 있었지만 아내의 위로 덕에 최악을 면했고, 온갖 허드렛일로 악착같이 생활비를 벌어온 아내 덕에 나는 다시 이를 악물고 일어설 수 있었다. 그리고 한참 후 작은 행운이 찾아왔다. 전에 거래했던 원단 회사 사장님의 연결로 작은 규모의 공장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제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정말 밑바닥을 기며 하청을 받아 재기에 몸부림 쳤다. 그렇게 정신없이 일하던 어느 날, 아내가 사고를 당했다. 척추를 다쳤다는 소리에 눈앞이 캄캄해져 병원으로 달려가니 아내는 언어장애와 함께 하반신이 마비된 채 힘없이 누워있었다. 가슴이 미어지고 억장이 무너졌다. 그러나 마냥 울고 있을 시간조차 없었다. 그날부터 낮이면 일터에서, 밤이면 딸들과 번갈아가며 병원에서 아내의 병간호에 매달렸다. 하루하루 죽고싶을 만큼 힘들었지만 그래도 웃을 수 있었던 건 아내의 살고자하는 의지 때문이었다. 필사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말을 하려 애쓰고, 휠체어를 붙들고 얼굴이 터질듯 힘을 주며 일어서려 버티는 여자. 사람이 살고 싶은 건 주변 환경이 좋아서가 아니다. 한 줄의 빛도 보이지 않는 절망의 끝에서 삶의 의지와 희망을 불태우는 불가사의한 모습을 볼 때가 아니던가. 세월은 흘렀지만 아직 어둠은 걷히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새벽이 오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제는 다 큰 딸들이 내 어깨를 주물러주며 ‘걱정말라’고 안심시켜 주고, 조금은 나아진 모습으로 휠체어에 앉아 그 어눌한 말투로 “고마워…요” 하고 말하는 아내가 있다. 그래 살자.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은 꼭 편하고 잘살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리라. 오늘은 아내의 손을 잡고 나는 잊어버린 그 아련한 미소를 가만히 아내에게 보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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