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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항상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지만 장애인이나 노인,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주 아픔을 겪으며 살고 있다. 단지 표면화 되자 않을 뿐…. 20년 전 어느 추운 겨울날 나는 소박한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날은 결혼기념일 이었기에 퇴근하는 남편이 작은 선물을 사들고 환하게 웃으며 들어올 것을 기대하며 식탁을 차리고 있었다. 가난했던 시절, 아니 늘 생활에 허덕이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은 훈훈했던 그때, 도시락을 가져가지 않으려는 남편에게 즐겨먹는 주먹밥을 싸주며 "정말 주먹밥을 좋아하나보네~” 하고 웃으며 건넸다. '남편이 맛있게 먹었을까, 혹시 모자라진 않았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남편을 기다렸다. 처음으로 즐겨보려 했던 결혼기념일 축하파티에 나는 가슴이 부풀어 있었다. 고아원에서 알게 돼 결혼까지 한 남편은 서로의 외로움과 아픔을 알기에 세상 어느 부부보다 아끼며 살았다. 고백을 하자면 남편은 농아였고, 나역시 건강이 썩 좋은 편은 아니다. 장애 때문에 변변한 직장을 못 찾아 고생한 남편은 새로 시작한 퀵서비스 일을 정말 좋아했다. 옛날부터 자전거 타기를 좋아했던 남편은 오토바이를 탈 수 있는 직장을 얻은 것만으로도 행복해했다. 어려서부터 말을 못한다고 손가락질 당하던 고아원시절의 오빠, 아이들이 놀리며 돌을 던져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냥 히죽 웃기만 하던 사람. 실컷 두들겨 맞고도 고개를 흔들고 일어나 눈가에 멍을 어루만지던 남편. 나 역시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 착한 마음 하나 믿고 살림을 차렸다. 그리고 5년, 내 집을 마련하자는 꿈 하나로 아이를 갖는 것도 미루고 우리는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결혼 후 처음으로 함께 촛불 켜고 결혼기념일을 축하하자고 약속한 그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10시가 넘고 있었다. 7시면 들어올 사람이 늦도록 오지 않으니 내심 노심초사하고 있었는데, 고요함을 깨는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거기 아무개씨 댁입니까? 교통사고가 났는데요!” 무너지는 가슴을 안고 대문을 박차고 나갔을 때, 집 앞 사거리에는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완전히 찌그러진 낯익은 오토바이, 빛깔도 고운 생크림케잌이 처참히 길에 널려져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 피투성이가 된 남편의 손 사이로 장미꽃 한송이와 작은 머리핀 하나가 꼭 쥐어져 있었다. 회사에서도 그는 따돌림을 받은 모양이었다. 같은 직원끼리 옹기종기 모여 맛있게 먹어야할 도시락대신 혼자 멀리 떨어져서 주먹밥을 먹은 남편. 그날따라 눈이 많이 쌓여 길이 미끄러운데도 거리가 먼 배송지만 골라 시키는 사장의 명령에 고개만 끄덕이며 오토바이를 달리다 너무 늦어지는 바람에 집 앞에서 속도를 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 이었다. 차가운 겨울 하늘, 화장터 굴뚝으로 피어오르는 남편의 연기를 바라보며 나는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세상시름 다 놓고 당신처럼 착한사람들만 사는 곳으로 가요….’ 지금도 나는 남편이 남긴 작은 머리핀을 꽂고 있다. 홀로된 후 가게를 하나 얻어 악세사리 가게를 하고 있다. 한 평 남짓한 이 작은 가게지만 그 착한 사람은 영원히 날 지켜주고 있다고 믿기에 오래도록 홀로 있어도 내 마음은 따뜻하다. 인생은 아픔을 안고 또 그렇게 흘러갈 것을 알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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