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노트 PHP

' 어머니… ’

"엄마 시장갔다 올테니, 밥 꼭 챙겨먹고 학교가거라"
난 장사가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도 잠을 자는 척 했다.
이 지겨운 가난….
막노동 중에 철근에 깔린 엄마를 구하려다 아버지는 사망하고 엄마는 한쪽 다리를 잃으셨다. 시장 한귀퉁이에서 구걸 비슷하게 장사를 하는 엄마모습이 보기싫어 나는 멀리 돌아 학교를 다녔다. 비록 풍요롭게 먹고 입지는 못했지만 공부는 악착같이 했다. 그래서 부잣집 자식놈들보다 공부는 항상 잘했다. 하지만 그 자식들에게 사는 미움도 만만치 않았다.
그날 4교시가 끝날 무렵 아이들이 갑자기 웅성거렸다. 복도를 보니 엄마가 절뚝거리며 교실로 들어서는 게 아닌가. 선생님 드린다고 잘 다듬은 나물 한단을 들고서….
선생님과의 면담을 끝내고 엄마가 돌아가시자 아이들이 한마디 씩 했다.
"야! 이민석 너네 엄마 병신이었냐?" 그 잘난 부잣집 아들 현우였다. 현우는 엄마 걸음걸이를 흉내냈고 반 아이들이 '와∼’하고 웃어댔다. 난 이성을 잃은 채 녀석을 마구 두들겨 패곤 교실을 나와버렸다. 저녁무렵 집 앞에 잘 차려입은 여자와 현우가 엄마에게 마구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니 애비없는 자식은 이래도 되는거야? 못 배우고 없는 티 내는 거야 뭐야!.”
엄마는 연신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난 그런 엄마의 모습이 싫었다. 집엘 들어갔지만 엄만 아무 말씀이 없었다. 난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창피하게 다시는 학교에 오지말라고.
그렇게 모진 사춘기를 보냈다. 엄마에 대한 애증으로 난 늘 말이 없었고, 엄마는 공연히 죄라도 지은 양 수업료를 줄 때도 조심스럽게 내 책가방에 밀어넣곤 했다. 그래도 꼬박꼬박 대학까지의 학비를 엄마에게 타냈고 군대생활 3년동안 난 혼자 자란 양 집에 연락도 없이 군생활을 마쳤다. 군에서 제대하던 날 집엘 오다 배추가게 옆 쓰레기통에서 배추잎을 주워모으는 엄마를 보았고, 그 날 밥상에 오른 배추국을 보곤 끝내 수저를 던져버린 채 집을 나오고 말았지만 알고보니 그 날이 엄마의 생신 날이었다.
그렇게 못되고 독한 젊은 날을 보낸 나는 17년 후 의사가 돼있었다. 처가 덕에 병원도 개업했다. 바쁘고 풍요로운 생활은 곧 과거를 잊게 만들었고 엄마에겐 빚진 심정이 남아 돈은 꼬박꼬박 보내 드렸지만 찾아가 본 적은 없었다. 아니 어머니라는 존재를 잊고 싶은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 길에 가정부 아줌마가 낯익은 할머니와 다투는 것이 차창으로 비쳤다. 야윈 얼굴 허름한 옷차림 그리고 여전히 절뚝거리는 다리…. 난 그만 차를 돌리고 말았다.
그 후 한달 간 난 악몽에 시달렸다. 그리고 다시는 되돌아가기 싫은 그 시장골목 옛날 우리 집을 찾았다. 기침을 해대며 채소를 팔고있는 엄마의 모습이 멀리서 보였다. '도대체 그동안 보내준 돈은 다 뭐하고 저 고생을 하고 계신단 말인가.’
화가 치밀어오른 나는 발걸음을 돌려 근처 술집으로 들어갔다. 홧 술을 몇 잔을 들이키는데 '야가 누구여∼’하며 누군가 어깨를 툭 치는 게 아닌가. 옛날 옆집에 살며 목수일 다니던 아저씨였다. 이미 노인이 되어 아들집에 얹혀살지만 내 모습만은 단박에 알아봤다고 했다.
"니가 누구 덕에 그렇게 컸냐 임마!”순간 일침을 가하는 노인의 말에 나는 '정말 무식한 것들이란’하며 눈을 치켜떴지만 뒤이어 심장을 붙들어매는 긴 얘기를 들어야 했다.
"니가 쓰레기통 뒤지고 다닐 때 아무도 널 거두지 않았지만 자식이 없던 니 부모들이 그래도 널 불쌍하다고 데려다 키운거야”. 가난했던 내 양부모는 어린 나를 맡길 곳이 없어 공사판까지 데리고 다녔는데 어느 날 무너지는 철근 밑에 놀고있는 나를 구하기 위해 함께 뛰어드셨고 그 때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엄마는 한쪽다리를 잃었다고 했다. 주위사람들은 모두 아이를 키울 수 없으니 고아원에 보내라고 성화였지만 엄마는 끝내 날 버리지 않고 채소장사를 하며 살아오신 것이다. 그리고 내가 결혼한 뒤 엄마는 암이라는 판정을 받았고, 마지막으로 나를 한번 보기위해 물어물어 내집을 찾아 갔었다고 했다.
"니 엄마가 얼마나 니 자랑을 했는지 아냐, 얼마 전엔 저기 장애인 학교에 니가 갖다주라고 했다믄서 장학금 3천만원을 니 이름으로 내놓았쟎냐!. 모두 훌륭하다고 칭찬을 했지만 왜 엄마는 모셔가지 않는거냐 임마, 이제 살 날도 얼마 안 남았잖아!…”.
찬 바람이 휘몰아치는 시장입구에 서서 내 몸은 화석이 된 양 그대로 굳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