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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의 지진사태의 비참한 상황들을 TV에서 보며 우리가 그동안 너무나 잘 먹고 풍족하게 살고있다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우리도 그렇게 못먹고 어렵던 시절이 불과 30여년 전 인데, 어느새 배고픔이란 단어는 남의 나라 말이 되고 말았으니 정말 이 땅에서 태어난 것이 고맙고도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 풍요로움이 자칫 오늘의 삶에 고마움을 모르고 매사를 쉽게 생각하는 젊은이들에게 해가 되지 않을까하는 노파심도 생긴다. 옛날 얘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내가 20대를 보냈던 저 70년대 초만 해도 주위에서 영양실조로 쓰러지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내가 세들어 살던 옆방에도 공단의 여공들이 여러 명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어쩌다 들려오는 얘기로는 열악한 작업 현장이나 밀린 봉급 얘기, 야근을 할 때 졸지 말라고 바늘로 여공들을 찌르는 작업반장 얘기를 하곤 했다. 그 여공들 중에 시골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한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늘 단발머리를 하고 낯빛은 창백했다. 그러나 성격은 언제나 명랑하고 쾌활해서 가끔씩 밑반찬을 건네주기도 했다. 자세히는 알 수 없었으나 그녀는 오빠의 학비를 보태고 있다고 했다. 오빠가 의과대학생이어서 졸업만 하면 의사가 되고, 그 오빠가 의사가 되어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하루의 일과가 조금도 피로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앓기 시작한 것은 그 해 장마가 한창일 때였다. 우리는 그녀가 앓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그녀의 얼굴이 퉁퉁 부어 병원에 입원을 했을 때에야 비로소 알았다. 옆방의 여공들과 함께 돈을 모아서 우리는 과일꾸러미를 사들고 그녀의 병문안을 갔다. 뜻밖에 그녀의 병세는 위중해서 얼굴이며 온몸이 퉁퉁 부어있었을 뿐아니라 말도 제대로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우리가 병문안 온 것을 몹시 고마워하며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애를 썼다. 병실에는 시골에서 올라온 그녀의 어머니와 대학생인 오빠가 있었다. 그녀의 오빠는 동생이 자기의 학비를 보태기 위해서 라면 두 개로 하루의 끼니를 때운 적도 있다고 했다. 지난겨울 모처럼 동생이 자취하는 방을 찾은 그는 한눈에 그녀가 영양실조에 걸린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 흔한 링거주사 한 번을 놔주지 못하고 계란 두 줄을 사서 놓고 나올 때 가슴이 미어지는 듯 했다고 울먹였다. 그 해 여름이 가기 전에 그녀는 꽃다운 나이로 고달픈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녀의 오빠가 셋방을 정리하기 위해 왔다. 그녀는 소지품도 단출했다. 앉은뱅이 책상 한 개와 몇 권의 책. 비키니 옷장 하나가 소유품의 전부였다. 우리는 그녀의 오빠가 짐 정리하는 것을 돕기 위해 그 방에 갔는데, 주인없는 앉은뱅이 책상 앞에는 '바르게 살자' 라고 쓰여진 서툰 글귀의 흰 종이가 초라하게 붙어 있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그 다섯 글자가 그때 얼마나 내 가슴을 울렸는지…. 지금은 모두 지나간 얘기지만 모든 물자가 풍부해지고, 지금 청소년들이 배고픔의 설움을 모른 채 음식투정을 하는 것을 볼 때면 가끔씩 그 때 일이 떠올라 옛 얘기를 들려주고 싶어진다. 그리고 나 또한 그 글귀대로 살고 있는지 늘 두렵게 느껴지곤 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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