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올해로 결혼 26년을 맞았다. 난 그 세월 중에 23년을 전신마비로 꼼짝을 못한 채 남편과 딸아이의 손과 발을 빌려 살아 왔다. 요즘 같은 세상에 병든 아내를 버리지 않고 손수 보살피며 살아주는 남편이 있어 너무 고맙고, 내 손으로 무엇 하나 해준 것도 없는데 곱고 바르게 자라준 딸이 있어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남편과 나는 젊은 날, 친구 소개로 만나 한눈에 반해 결혼했다. 그러나 둘째아이를 임신했을 때 임신 7개월이 될 때까지 입덧이 너무 심해 물 한 모금도 넘기기 힘들었다. 하지만 주위 어른들이 ‘남들 다 하는 입덧이니 괜찮다’고 하셔서 참고 견뎠다. 어느 날 새벽 잠자리에서 갑자기 숨이 차고 가슴에 통증이 오는가 싶더니 곧 정신을 잃고 말았다. 남편이 축 늘어진 나를 안고 병원에 가니 이미 늦어 되돌아가라고 했단다. 하지만 남편은 진찰만이라도 받아보게 해달라고 매달렸고, 진단 결과 심장판막증에다 뇌혈전증까지 겹쳐 있었다. 중풍이 온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숨만 쉬는 사람, 나무둥치처럼 눈만 뜨고 누워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퇴원한 뒤에도 남편은 나와 딸아이한테 발이 묶여 밖에 나가 일을 한다는 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남편은 아이를 등에 업고 집과 대리점을 오가며 우유 배달을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자, 수입이 적어도 내 병수발과 집안 살림을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갖가지 일을 전전했고, 지금은 가게마다 부식을 대주는 일을 하고 있다. 남편은 아직도 내 생일날에 미역국을 끓여준다. 결혼하고 겨우 3년간 아내가 차려 주는 밥상을 받았고, 그 몇 곱절도 넘는 세월을 나에게 밥을 차려주고 있다. ‘차라리 그때 세상을 떠났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치매라도 왔다면 더 편했을지도 모른다. 일정 시간이 흐른 뒤 몸은 움직일 수 없는데 정신은 말짱해졌고, 날 수발해주는 남편을 보기가 미안해 견디기가 더 힘들었다. 그러나 남편은 내가 쓰러질 때 젖먹이였던 딸아이를 스물다섯의 어엿한 숙녀로 잘 키워주었고, 내게 싫은 내색도 별로 하지 않았다. 사람인데 왜 짜증이 나지 않겠는가. 어느 순간, 나는 죽고 싶은 마음을 버리고 남편과 딸을 위해 하나라도 내손으로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열심히 재활운동에 용을 썼다. 가족을 힘들게 하고 청춘을 침대에서 썩은 것이 너무나 억울해서 치열하게 재활기구에 매달린 것이다. 지금도 몸을 제대로 쓸 수는 없지만 오른손을 움직여 물건을 조금 옮길 수 있고, 책을 읽을 수 있고, 글도 조금 쓸 수 있다. 사람이란 좌절하면 좌절한 만큼 무너지고, 힘을 내면 그 힘낸 만큼 희망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제는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으려 한다. 그 대신 더 열심히 약을 먹고, 재활에 힘써 남편의 고생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싶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