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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치매기가 있어 가끔씩 현실을 혼돈하긴 하지만 비교적 건강했던 시어머니가 어느 순간 건강이 나빠져 반 혼수상태에 빠진 채 병원으로 모셨다. 처음 얼마동안은 내가 곁에 가서“어머니!”하고 부르면 눈을 뜨고 내 쪽을 보며 미소를 지었고, 얼굴을 닦아드리거나 무언가를 해드리면 작은 소리로“고맙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그리고“어머니!”하고 부를 때마다 눈을 뜨고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날이 계속되었다. 친구분이 병문안을 오면 그 분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희미한 미소를 띠거나 눈에서 눈물을 굴러 떨어뜨리기도 했다. 큰 집 식구들도 극진히 간호를 했고, 시누이들도 번갈아 가며 병실을 지켰건만 희미한 미소를 띤 상태가 한동안 지나고 나자 이제는 아무리 불러도 눈을 감은 채 반응이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 급기야 "어머니!, 엄마!”하며 이웃 병실 환자들에게 폐가 될 정도로 계속 불러도 소용이 없었다. 슬픔과 허무감으로 숨이 막히는 듯 했다. 간호사가 방으로 들어왔다. 시누이가 간호사에게 말했다.“이젠 아무리 불러도 모르시는 것 같아요.”그랬더니 간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주사를 놓아 아프게만 하기 때문에 안되지만 가족이 부르면 입가가 조금씩 달라져요. 맘속으론 기뻐하는 거지요.” 간호사는 가족이 부르면 입주변이 달라진다며 빙그레 웃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눈을 감고 계신 어머니 곁에서“어머니! 어머니!” 하고 계속 부르는 것이 무척 소중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이 부르면 입가가 달라진다?….’, 5월 어느 해질녘의 일이었다. 시어머니가 몹시 숨이 가파하셨다. 우리 가족은 눈물을 삼킨 채 어머니! 엄마! 하고 소리내 불렀다. 눈을 감은 채 몹시 힘들어하시면서도 어느 새 그 소리를 다 들으시는 듯 시어머니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 있었다. 독실한 신앙을 가졌던 시어머니는 인간의 소멸에 대해 늘 담담한 마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셨기에 우리는 큰 소리로 울부짖거나 흥분하는 것을 자제한 채 조용히 눈물만 삼켰다. 이틀 밤을 꼬박샌 뒤, 남편이 다시 한번 '어머니!…’하고 나직이 부르자 입가에 가녀린 미소가 떠오르다 조용히, 그리고 서서히 멈췄다. 조용한 임종이었다. 편찮으신 시어머니를 모시는 문제로 그동안 큰집 형님과 언짢은 일도 있었고, 요양원으로 모시기도 했지만 마지막 3개월을 내가 모시는 동안 어머님은 비교적 별 탈없이 환자같지 않게 지내셨다. 그렇게 쉽게 가려니 하고 생각지 못했기에 때로 귀찮기도 하고 짜증도 났지만 임종 후, 문득 그 분이 안계시다는 것을 느꼈을 때,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나자신은 영원할 것 같은 생각으로 살고 있지만 어느 순간 나도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을 때, '좀 더 자주 불러드릴 걸, 자주 웃어드릴 걸’하는 후회가 물밀 듯이 밀려와 가슴이 뻐근해졌다. 노인에게 기억되는 건 자식밖에 없는데, 가족이 부르면 저승길에서도 뒤돌아보는 게 부모마음인데 다정한 말 한마디에 왜 그렇게 마음이 인색했는지. 정말 부모님 살아계실 때 섬기기를 다하여야 후회없는 생을 사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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