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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가는 대학 다니고, 졸업과 함께 몇 군데 아르바이트를 전전한 나는 이력서를 서른 번을 더 쓰고도 원하는 직장을 얻을 수 없어 고향으로 내려왔다. 얼굴을 뜯어고쳐서라도 반반해보여야 사람대접 받는 분위기 속에서 생김새가 너무나 신통치 않았던 나는 성형은커녕 매달 내는 방세도 부담스러워 공무원시험을 치겠다는 핑계를 대고 부끄럽게도 부모님 곁에 빌붙은 것이다. 고향에선 그나마 아이들 과외를 해서 용돈은 벌 수가 있었다. 그러나 과외시간이 대개 오후 늦은 시간인지라 나는 오전에 실컷 잠을 자고 밤이 되어야 제대로 활동을 하는 야행성 직업인이 되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마음에 안들면 선생을 밥먹듯 갈아치우는 경향이 있어 나중엔 내가 공부를 가르치는 것인지 학생들에게 휘둘리는 것인지조차 분간이 가지 않았다. 짖궂은 아이들은 공부는 하지않은 채 빤히 내 얼굴을 쳐다보고는 “선생님은 왜 화장도 잘 안해요?” 라는 말 따위로 얼짱 콤플렉스가 많은 내 자존심을 건들기도 했다. 여자들에게 친구란 또 어떤 존재인지, 마음을 달래려 친구들 모임을 나가도 시집 잘 간 친구들의 화려함, 직장에서 잘나가는 친구들의 자신있는 모습에 기가 꺽여 차츰 모임에 조차 발을 끊었다. 부모님께선 시간날 때마다 결혼을 해야 하는데 어쩔지 모르겠다는 등의 걱정을 늘어놓는 바람에 이제 집에서 지내기도 때로는 바늘방석 같았다. 없는 돈에 대학공부까지 시켜주셨는데 아무 보답도 해드리지 못한다는 생각이 너무 죄스러워 자꾸만 삶의 의욕이 상실돼갔다. 그래도 속마음을 감춘 채 집안에선 늘 웃는 얼굴로 명랑하게 대했지만 자꾸만 ‘내 인생은 실패구나’하는 좌절감이 밀려와 도무지 어떤 일에도 흥미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언제나 삐딱하게 왔다갔다 하는 중3, 재혁이에게서 결적적인 상처를 입고 말았다. 녀석은 그날따라 피식피식 웃더니 “우리 엄마가요 선생님 얼굴이 모과처럼 생겨서 오히려 안심이 된대요. 얼굴이 못생겨야 공부는 잘 가르친대나요”. 녀석의 그 말이 너무나 정떨어져 나는 과외까지 때려치우고 싶었다. 깊은 우울증에 빠졌고, 어떤 때는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 부르르 떨기도 했다. 나 자신도 싫고 세상 누구도 만나기가 싫어졌다. 도대체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며칠을 감기가 걸렸다는 핑계를 대고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너무나 우연히도 거실 한쪽에 모과하나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날따라 아무도 없는 집에 가만히 누워있는데 어디선가 참으로 향긋하면서도 달큰한 향기가 내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이 아닌가. 가만히 고개를 들어 향기나는 쪽을 바라보니 내 얼굴처럼 못생긴 모과하나가 거실 한쪽 구석에서 가만히 썩어가고 있었다. '한 알의 밀알이 썩지 않으면 그 열매를 거둘 수 없다' 는 성경말씀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다만 썩어가는 그 모과의 향기가 너무나 그윽해 나는 나 자신이 다시 환생하는 기분이 들 지경이었다. 썩어가는 모과의 향기…. 나는 사과같은 내 얼굴이 아닌, 모과같은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가만히 중얼거렸다. ‘그래, 썩을 만큼 썩었으니 이제 향기를 뿜어야지!…’ 그길로 나는 바닥을 치며 일어났다. 그리고 재혁이란 놈을 보기좋게 가르쳐 원하는 고교에 입학시켰다. 도시로 고교유학을 가는 재혁이가 마지막날 인사를 했다. 나는 호탕한 웃음으로 녀석의 등을 치며 말했다. “야! 모과같은 선생님 만나기 쉬운 줄 아니, 너 일생일대의 행운이야 임마!…”. 나는 영화의 주인공처럼 씩씩해졌고, 내 인생의 향기가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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