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만화책을 본 기억은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선생님 눈치를 살피며 몰래몰래 읽던 그 만화책은 왜 그렇게 재미있던지. 고등학교에 다닐 때 수업 시간에 만화책이나 소설책을 돌려보다가 선생님께 걸리면 대부분의 선생님은 만화책을 빼앗아 캐비닛에 보관하거나 훈계를 하시곤 했다. 어느 날, 나는 과학시간에 만화책을 읽다가 선생님께 들키고 말았다. 엄하기로 소문난 과학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딴 짓 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셨다. 혼자서 밤을 새워가며 예습, 복습하는 것보다 수업시간에 열심히 듣는 것이 공부 잘하는 비결이라고 누누이 말씀하시곤 했던 것이다. 그런 선생님께 딱 걸렸으니 만화책이 찢기는 것은 물론, 벌을 받고 반성문을 써야한다고 생각했다. 어쩜 그 학기 내내 선생님의 미움을 살지도 모른다는 불길하고 불안한 생각에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선생님은 말없이 그냥 만화책만 빼앗아 가셨고 학생들이 보는 가운데 교탁 안에서 만화책 찢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그리곤 별다른 말없이 수업을 진행하셨다. 만화책을 본 나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학생들도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과학 선생님한테 걸리면 큰일이라며 안 빌려주려 했던 만화책 주인 기식이 얼굴은 아예 사색이 되다시피 했다. 난 기식이에게도 너무 미안해서 새 만화책을 사줘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당장 선생님의 노여움을 풀어드릴 길이 막막해 수업시간 내내 안절부절 했다. 과학수업을 마친 후 선생님은 말없이 교실을 나가셨다. 차라리 큰 소리로 야단을 맞았더라면 속이 후련했을 것을…. 갈가리 찢겨졌을 만화책을 쓰레기통에 넣으려고 교탁 밑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만화책이 찢어진 곳 없이 말짱하게 놓여있는 게 아닌가. 선생님은 만화책 대신 다른 종이를 찢어 소리만 크게 내었던 것이다. 그 사건 이후 난 학업 태도가 무척 좋아졌다. 선생님은 반성문을 쓰라고 하지도 않았고 별다른 벌을 주지도 않으셨다. 선생님의 침묵에 내겐 더 큰 반성을 불러일으켰고, 난 다시는 수업시간에 딴 짓을 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다. 나는 그 선생님 덕에 졸업할 때는 모범생에게 주는 ‘학업상’을 받고 졸업했다. 자녀를 둔 아버지가 된 나는 가끔 회초리를 들기도 하지만 때론 잘못이라는 것만 알려주고 모른 척 해주는 것이 아이들에게 더 큰 감화를 준다는 것을 느낀다. 아이들은 강요하면 잘 듣지 않지만 스스로 깨닫게 해주면 신기하게도 잘 따른다. 나에게 이러한 가르침을 주신 과학선생님은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