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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에서 목회활동을 하고 있는 김목사 앞에 어느 날 건장한 한 노인이 찾아와 섬에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이 섬은 나환자들만 사는 곳인데 멀쩡한 어른이 왜 이곳에서 살려고 하십니까?”하고 묻자 노인은 긴 한숨을 쉬며 지난 생을 뒤돌아보듯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저는 안정된 직장에 다섯명의 자녀를 두고 행복한 삶을 누렸는데 어느 날 막내가 이상한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발병사실을 알았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은 그 아이를 가족과 동네로부터 격리시키는 일이었죠." "여기로 왔겠군요" "그렇습니다. 소록도에 당도했을 때 배를 타러 몰려든 사람들 중에 눈썹이 빠지거나 손가락이며 코가 달아난 나환자를 정면으로 보게됐죠. 그 순간 아직은 멀쩡한 내 자식을 소록도에 맡길 수 없다는 생각에 아이를 데리고 바닷가로 나왔어요. 그리곤 "저런 모습으로 살아서 무엇하겠니, 차라리 너하고 나하고 여기서 죽는 길을 택하자." 하고 말하자 아이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신발을 벗어두고 물 속으로 들어가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오던지…." 한발 두발 깊은 곳으로 들어가다가 거의 내 가슴높이까지 물이 찼을 때 갑자기 아들녀석이 소리를 지르지 않겠어요. 내게는 가슴높이였지만 아들녀석은 턱밑까지 물이 차올라 한걸음만 삐끗해도 그대로 물 속으로 가라앉을 판인데 갑자기 내 가슴을 떠밀며 악을 써대는 거예요. "문둥이가 된 건 난데 왜 아버지까지 죽어야 해요! 엄마랑 형, 누나들이 아버지만 믿고 사는데 아버지가 죽으면 모두 어떻해 살아요! 하는 게 아니겠어요. 저 혼자 죽을테니 아버지는 어서 나가라고 떠미는 녀석을 보는 순간 나는 가슴이 미어져 그 애를 붙들고 물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곤 여기서라도 살아가라고 소록도에 맡긴 채 서울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40년. 남은 아이들은 잘 자라서 대학도 나오고 결혼을 해서 손자손녀를 낳고 모두 행복합니다. 비참하게 변해있을 자식의 모습을 본다는 게 생각할수록 막막해서 애써 찾지도 않고 잊으려고 애쓰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아내가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났죠. 아버지를 모시겠다며 자식들이 오라고 하길래 큰아들네로 살림을 옮겼는데 얼마동안은 참 편하더니 날이 날수록 자식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인가 드디어 큰 아이가 입을 열더군요. 큰아들만 아들이냐고요. 그 날로 말없이 짐을 꾸렸죠. 그리고 찾아간 둘째, 셋째도 마찬가지였어요. 문득 소록도에 버린 자식 생각이 났습니다. 내 손으로 죽이고싶도록 한스러웠던 막내. 끝내는 소록도에 내팽개치고 40년을 잊고 살아왔던 아이.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이 곳을 찾았을 때 아이는 나보다 더 늙어 알아볼 수도 없이 변해있더군요. 다 빠져버린 눈썹, 뭉그러진 코와 손이 옛날을 기억할 수도 없게 만들었지만 눈빛만은 예전과 다름없이 투명하고 맑은 눈망울로 나를 반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곤 나를 껴안으며 이렇게 말했죠. "아버지를 한시도 잊은 날이 없어요.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40년이나 기도해 왔는데 이제서야 기도가 응답되었군요."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여유도 없이 물었죠. 어째서 이 못난 애비를 그렇게 기다렸는가를. 자식을 버린 채 한번도 찾지 않은 무정한 애비를 원망하고 저주해도 모자랄 텐데 무얼 그리기다렸느냐고…. "나보다 더 힘들고 비참한 이웃들을 보며 그리움을 삼켰어요, 세상의 악과 멀리하라고 이 몸 묶으신 주님의 뜻도 알게 됐구요. 그래서 날 여기 보내고 가슴 저몄을 부모님을 꼭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하며 그 문드러진 얼굴로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더군요. 난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나의 힘으로 온 정성을 쏟아 가꾼 네 개의 화초보다 쓸모없다고 내다버린 하나의 나무가 더 싱싱하고 푸르게 자라 있었다는 것을. "그러니 목사님, 저를 여기에서 살게 해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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