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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아버지는 농부였다. 해도 해도 끝없는 농사일로 자리에 눕고서야 그만두셨다. 결혼해서 대구에 살고 있던 나는 어느 날 아버지께 우리 집에 한번 갈 것을 권했다. “아버지, 저랑 같이 대구에 놀러 가요. 지금껏 기차구경도 한 번 못하셨잖아요.” 아버진 누우신 채로 갑자기 말했다. “야가 지금 무슨 소릴 하노. 단칸 셋방에 너 아이들하고 산다고 밥이나 실컷 먹었겠나, 그런데 내가 거길 어디라고 가겠노.” 하며 단호히 거절했다. 사는 게 버거웠던 나도 어쩌면 인사치레로 말했는지 모른다. 가락국수 한 그릇도 배불리 못 먹던 때였으니까. 그런데 아버지는 정말 외출이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몇 번을 마다하시던 아버지가 어느 날 집으로 가려는 나를 불렀다. “니 정말 대구 구경 한번 시키 줄래?” 어머니도 나도 놀랐다. 한번도 시내구경을 입 밖에 내신 적이 없던 아버지였기에…. 이튿날 아침, 아버지는 정말로 외출준비를 하셨다. 혼자서 ‘그래도 나 먹을 건 가져가야지’ 하고 중얼거리더니 쌀 한 말을 자루에 담고, 깨끗한 한복을 갈아 입으셨다. 그리고는 어디서 힘이 났는지 쌀자루를 번쩍 어깨에 메고는 나를 앞세웠다. 갑자기 씩씩해진 아버지가 걱정돼 얼굴을 살피니 신기하게도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하지만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 불안한 마음을 애써 숨기며 대구 우리 집까지 왔다. 비록 단칸 셋방이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가 내 집에 오셨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했다. 피곤하실지 몰라 아버지를 위해 얼른 자리를 펴려 했더니 아버지는 “야야, 괘안타. 사실 나는 북부 정류장에서 실컷 더 앉았다 왔으면 좋겠더라. 차가 우째 그래 많노.”하시는 거였다. 먼 여행이 흥분이 됐는지 잠을 못 이루는 아버지와 이야기로 하룻밤을 다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본격적인 대구 관광에 나서며 난 제일 먼저 안경점으로 아버지를 모시고 갔다. 안경을 껴보며 고맙다는 말을 열 번도 더 하신 아버지. 작은 글씨가 보이는 게 너무 신기하다는 듯 길에 있는 간판은 모두 소리 내어 읽으며 달성공원까지 걸으셨다. 동물원이 처음인 아버지는 철장에 바짝 붙은 채 떨어질 줄을 몰랐다. 아버지는 내게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는 듯 그 많은 계단을 제일 먼저 올라가셨고, 이동사진사가 오자 나는 안 찍는다고 도망가는 아버지를 붙잡아 억지로 사진도 같이 찍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대구에 다녀가신 지 꼭 20일 만에 돌아가셨다. 숨을 거두시기 직전, 정신이 남은 마지막 순간까지 대구여행을 말씀하시며 막내 딸내미 자랑을 하셨다는 아버지. 단 5일간을 모셨을 뿐인 나를 사람들에게 최고의 효녀로 만들어놓고 가셨다. 이제 아버지는 안계시고 나 역시 자식들의 전화만 기다리는 노인이 됐다. 젊은 날 좀 더 잘살았다면 친정아버지 좋은 약도 사드리고 큰 병원에 모시고가서 치료도 더 받게 해드렸을텐데…. 살아갈수록 그 시절 어머니가 부르던 ‘불효자는 웁니다’ 라는 노래가 나도 모르게 읊조려진다. 모든 것을 다 주고도 다시 주고 싶어하는 것이 부모 마음이라는데, 어쩌면 아버지의 마지막 여행도 내가 좋아하는 모습이 보고 싶어 아픈 몸으로 따라 나선 것은 아니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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