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네 목욕탕을 갈 때마다 눈에 띄는 한 중년남자가 있었다. 그는 언제나 걸음이 시원찮은 노인을 모시고 다녔는데 보아하니 아버지 같았다. 중년남자는 언제나 노인이 혹시 미끄러지기라도 할까봐 조심조심 걸으며 욕탕으로 들어갔고, 노인이 아프지 않게 천천히 온몸을 씻기고는 “잠시만 기다리세요." 하고 탕으로 들어가 10여분 만에 자신의 목욕을 마쳤다. 목욕 후에도 행여 감기라도 들세라 서둘러 노인의 옷을 입히는 모습이 참 감동적이었고, 요즘도 저런 아들이 있나 싶어 다시금 눈길이 갔다. 그 모습을 보며 새삼 찔리는 구석이 있어 나는 오랫동안 마음이 우울했다. '잔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듯, 나는 내 부모를 그렇게 모시지 못했다. 차라리 아버지였더라면 나도 한번쯤은 그렇게 목욕이라도 함께 갈 수 있었으련만 몸져누운 분은 어머니였다. 평소엔 건강하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중풍으로 쓰러지셨고, 한 3년간 형님과 내가 번갈아가며 모셨다. 아버지라면 남자들의 역할이 컸을 터이나 어머니이다 보니 병간호의 몫은 주로 형수와 아내 차지였다. 불행히도 형수와 아내는 직장이 있어 언제까지 병간호에 매달릴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고역이었지만 그런 시어머니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아내와 할머니가 냄새가 난다며 얼굴을 찡그리는 아이들 모습을 보는 것도 괴로운 일이었다. 의논 끝에 우린 어머니를 노인요양시설로 보냈다. 그리고 처음엔 한달에 한번, 두달에 한 번 그렇게 잊혀진 듯 찾아갔다. 돌아오는 길엔 만감이 교차했지만 매달 시설로 보내야하는 비용부담이 언제나 가슴을 짓눌렀다. 어머니에 대한 연민보다는 ‘그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하는 생각마저 문득문득 떠올랐고, 그러다 천벌을 받을 것 같은 생각에 늘 마음이 착잡했다. 어머니는 그렇게 시설에서 7년을 지내고 돌아가셨다. 목욕탕에서 그 중년 남자를 본 후 만감이 교차했다. 효자가 되기도 정말 힘들었지만 내 자식에게 그런 효도를 받는다는 것도 기대할 수 없는 세상 아닌가. 문득 늙어 병들기 전에 운동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빡세게 들었다. 늙어서 병들기 전에 적어도 자신의 병원비만은 꼭 모아야겠다는 생각과 늙어서도 자신을 책임질 줄 아는 노인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아직은 젊다고 생각하며 살았지만 세월은 물같이 흐르는 것. 어영부영 세월보내다 자식에게 부모에 대한 비참한 기억을 안겨줘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가슴을 친 것이다 . 내가 늙고 병들어 자식이 찾지 않음을 서운하게 생각할게 아니라 내가 부모에게 얼마나 잘했나를 생각하면 모든 것이 이해가 되는 것이리라. 불교에서는 ‘전생에 빚진 자가 부모된 자’라고 했다. 내 자식은 내게 효도해서 빚을 갚는 게 아니라 내 손자 손녀에게 베품으로서 내리내리 부모에게 진 빚을 갚아나간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하루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