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난해 11월 어느 날, 나는 회사 돈 2천6백만원을 은행에서 현금으로 찾아 사무실로 가는 길에 그만 거리 한복판에서 순식간에 소매치기를 당했다. 너무 놀란 나는 '으악' 하고 외마디 비명만 지른 뒤 곧바로 기절하고 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떠보니 나는 병원 침대에 링거를 꽂고 누워 있었다. 발치에 몹시 굳은 표정으로 서 있던 직장상사는 범인을 잡을 가능성도 없고 회사에 큰 손해를 끼쳤다며 다짜고짜 변상을 요구했다. 의료보험도 안 되는 작은 출판사여서 회사로서도 대처할 도리가 없었다. 결국 6년간 직장생활로 모은 돈을 찾아 모두 변상하고 퇴직금조로 받은 2백만원을 든채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을 누운 뒤 집에선 회사 간다고 말하고 아침에 나와 온종일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그러나 취직은 쉽지 않았고, 언제까지 헤매고 다닐 수가 없어 작은 창고를 얻어 사무실을 꾸민뒤 출판영업을 시작했다. 점심은 돈을 아끼느라 굶고 저녁은 집에 가서 먹었는데, 엄마는 몸이 약한 내가 일찍 퇴근해서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는 것을 보고 영문도 모른 채 좋아하셨다. 부모님께 죄스런 마음에 시간나는 대로 집안일을 돕고, 당뇨병이 심한 엄마를 모시고 동네를 산책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 전엔 엄마의 어깨를 주물러드리면서 속울음을 삼켜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급히 쓸 데가 있으니 3천만원을 빌려달라고 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나 너무 괴로워서 죽고싶은 마음에 사무실에서 유서를 써놓은 뒤 집에 전화했다. “여보세요” 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자 목이 잠겨 왔다. “네가 아까 전화하고 끊었니? 안 바빠? 왜?” “엄마, 나 엄마 많이 사랑하는거 알지? 근데 정말 미안해, 이 못난 딸을 용서해 줘.” 결국 나는 순식간에 울음이 터져 그동안의 일을 말해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엄마는 언성을 높이시더니 집에 안들어오면 엄마가 먼저 죽겠다며 덜컥 전화를 끊으셨다. 불안해진 나는 그 길로 바로 집으로 들어갔다. 엄마 품에 안겨 세 시간 넘게 눈이 붓도록 우는 내게 엄마는 “네 돈이 아니어서 그런 것을 어떻게 하냐”며 잊으라고만 했다. 그리고는 부엌으로 들어가 나를 위해 밥상을 차리셨다. 이튿날 사무실에 와서는 아무것도 못한 채 울다 지쳐 밤 8시가 넘은 시각에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버스 안에서 살펴보니 엄마가 핸드폰에 메시지를 남겨 놓으셨다. 아빠랑 저녁도 안 먹고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오라고. 밤에 엄마 곁에 누운 내게 “네 나이 사십이 되어 지금을 뒤돌아보면 죽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것조차 생각나지 않을 거다…, 그런 힘든 일을 당하고도 왜 말을 안해서 엄마가 아무 도움도 못 주게 했니, 하늘은 사람이 감당할 만큼의 고통만을 준단다….” 어둠 속에서 조용조용 울리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사라져도 어머니의 사랑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 라는 말이 있다. 나는 엄마 말씀대로 20대 초반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아직 아무것도 이루진 못했지만 마음만은 장거리 인생경주를 뛸 수 있을 것 같다. 가족이 있고, 아직은 건강한 신체가 있고, 새롭게 시작할 각오가 있으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