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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그 해 겨울, 그녀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오늘은 자신의 생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사랑하는 남편이 선물을 사들고 환하게 웃으며 들어올 것이다. 그 날 아침 출근하는 남편에게 건넨 주먹밥. 남편은 주먹밥이 아니면 도시락을 가져가지 않았다. "정말 주먹밥을 좋아하나보네” 아침에 주먹밥을 건네며 그녀가 한 말이다. ‘그 사람 맛있게 먹었을까, 혹시 모자라진 않았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남편을 기다렸다. 처음으로 차려보는 생일상. 고아원에서 알게 돼 결혼까지 하게 된 남편은 서로의 외로움과 아픔을 알기에 세상 어느 부부보다 아끼며 살아왔다. 남편은 농아였다. 장애 때문에 변변한 직장을 못 찾아 고생했지만 얼마 전부터 시작한 퀵서비스 일을 남편은 정말 좋아했고 열심히 했다. 옛날부터 자전거 타기를 좋아했던 그는 오토바이를 탈 수 있는 직장을 얻은 것만으로도 행복해했다. 어려서부터 벙어리라고 손가락질 당하던 고아원시절의 오빠. 아이들이 놀리며 돌을 던져도 그냥 몸을 피하며 히죽 웃기만 했지만, 내가 놀림을 당하면 성난 사자처럼 달려가 때려주었던 사람. 힘이 부쳐 오히려 실컷 두들겨 맞고도 고개를 흔들고 일어나 눈가에 멍을 어루만지던 그는 정말 바보처럼 순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10시가 넘고 있었다. 7시면 들어올 사람이 늦도록 오지 않으니 내심 노심초사하고 있는데 고요함을 깨는 하이톤의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거기 조명랑씨 계세요? 교통사고가 났는데요!” 무너지는 가슴을 안고 대문을 박차고 나갔을 때, 집 앞 사거리에는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완전히 찌그러진 낯익은 오토바이. 빛깔도 고운 생크림 케잌이 처참히 길에 널려져있었다.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남편의 손 사이로 작은 머리핀 하나가 꼭 쥐어져 있었다. 회사에서도 그는 따돌림을 받은 모양이었다. 같은 직원끼리 옹기종기 모여 맛있게 먹어야할 도시락대신 혼자 멀리 떨어져서 주먹밥을 먹은 남편. 그날따라 눈이 많이 쌓여 길이 미끄러운데도 거리가 먼 배송지만 골라시키는 사장의 명령에 고개만 끄덕이며 오토바이를 달리다 너무 늦어지는 바람에 집 앞에서 속도를 내다 그만…. 차가운 겨울 하늘. 화장터 굴뚝에는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래, 세상시름 다 놓고 당신처럼 착한사람들만 사는 곳으로 가요….’ 새하얗게 바랜 얼굴로 홀로 영구차를 타고 온 그 여자는 잿빛 하늘을 바라보며 두 손으로 한없이 수화를 그리고 있었다. ‘사랑한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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