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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살에 홀 시아버지만 있는 남편이랑 결혼을 했다. 남편 위로 형님이 한분 있지만 남편이 시아버지를 모시자고 해서 왜 우리가 모셔야 하냐며 많이 싸웠다. 시아주버니는 대기업에 다녀서 형편이 좋았다. 그런대도 남편이 자꾸만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자고 해서 불만이 많았는데, 어느 날 남편이 술을 먹고 울면서 고백을 했다. 학창시절 사고만 치고 다녀 아버님이 매번 수습을 하러 다녔다고 했다. 또 고등학교 때 길을 건너다 트럭에 치일 뻔했는데 아버님이 밀쳐내는 바람에 남편이 무사했다는 것이다. 아버님은 그 후유증으로 지금도 오른쪽 어깨를 잘 못쓴다고 했다. 재혼도 하지 않은 채 홀로 건축현장을 다니며 모은 돈으로 자식을 키웠지만 남편은 군 제대를 하고도 26살까지 놀고먹느라 아버지 돈을 다 까먹었다고 했다. 아버님이 우리 결혼할 때 집 사주고 홀로 셋방살이를 하시니 자신이 모셔야만 한다고 눈물로 간청을 했다. 첫 애가 3살이 지날 때라 나는 시아버지를 모신다는 게 너무 불편하고 어려울 것만 같았다. 그러나 눈물로 간청하는 남편의 부탁을 뿌리칠 수가 없어 유야무야하고 있는데, 막상 아버님이 ‘늙은이 짐만 된다’며 함께 살기를 거부했다는 소리를 들으니 왠지 양심의 가책이 돼 아버님을 모셔왔다. 시아버지는 내가 슈퍼 갔다온 사이에 집안청소를 깨끗이 해놓아 그러지 마시라고 해도 “늙은이 운동하는 것이니 걱정말라”며 매번 걸레질을 하셨다. 며느리 눈치 보이나 싶어 자연스럽게 대하려고 애쓰지만 어른을 모시고 사는 게 결코 편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경로당에 간다고 나가신 아버님이 밤늦도록 돌아오질 않아 동네로 나갔더니 옆집 아줌마가 “새댁! 시아버지가 유모차에 박스 싣고 가던데”하고 일러주었다. 아무도 모르게 폐지 수집을 다닌 모양이었다. 퇴근한 남편에게 살며시 얘길했더니 방에 들어가 아이처럼 엉엉 소리나게 울었다. 나는 죄인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어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데, 아버님이 커다란 과일봉지를 들고 돌아오셨다. 남편은 “아버지, 그런 일 하지 마세요, 제가 용돈을 더 드릴께요”하고 울먹이자 아버님은 “노인이 아무 일도 안하고 집에 있는 것보다 뭐라도 하는 것이 건강에 더 좋은 것이니 괘념치 마라!”하곤 껄껄 웃으셨다. 아무리 ‘시’자 붙은 시댁식구 정 안든다는 말이 있지만 그런 시아버지를 뵈니 정말 마음이 따뜻했다. 나이 들어 홀로되고, 자식 뒷바라지 하느라 있는 돈 다 써버려 생활이 넉넉하진 않지만 그래도 떳떳하고 당당하게 생활하는 아버님. 불편한 마음을 털어내고 점차 내 친정아버지려니 하고 생활했다. 그러다보니 노인과 함께 사는 삶이 꼭 어려운 점만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들이 할아버지의 부지런한 삶과 예의를 배우니 큰 과외선생이 곁에 있는 것 같고, 특히 아들 녀석이 속을 썩일 때는 남편과 시아버지가 꾸지람과 다독임을 주니 내가 속 썩을 일이 적었다. 물론 반복되는 가사 일에 짜증날 때도 많았지만 그렇게 어우러지고 참아내고, 울고 웃으며 가족이 돼 가는 것이 아닌가. 어느 날 나는 아버님이 집에 계신 날 찻잔을 들고 들어가 가만히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아버님! 저도 처음엔 어려웠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아버님 계신 게 참 든든해요. 절 며느리라 생각지 마시고 친딸로 대해주세요.” 웬지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은 마음을 감추고 겨우 말을 했더니 아버님 하시는 말, “네가 며느리였냐? 난 내 딸 화숙이로 알고 있는데! ^^” 차 한모금을 입에 물자마자 ‘풋’하고 터져 나온 웃음 때문에 나는 그만 시아버지 얼굴에 기어이 커피방울을 튀기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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