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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이후 서울엔 노숙자가 증가한 것과 함께 걸인도 함께 늘어났다. 그리고 한동안 좋아지는가 싶더니 어느 새 다시 늘기 시작한 노숙자가 지하도를 점령하고 있어 밤늦게 식당문을 닫고 집으로 향할 때마다 때로는 비애를, 또 가끔은 ‘3D업종이라도 가지’ 하며 한심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곤 한다. 그러나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보면 시각장애인들이 열심히 차내를 오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은 걸인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직업으로서 지하철안을 자리잡은 것 같다. 그래서 때로 볼펜이나 껌 등을 가져가라고 쥐고있긴 하지만 그것을 가져가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나자신 인간에 대해 모진 편은 아니지만 식당을 운영하다보니 가끔씩 걸인들이 들어와 공연히 손님 곁에서 어정거려 골치를 앓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이래저래 짜증과 함께 ‘버럭’ 소리가 터져나오곤 하는 것이다. 그날도 비가 흩뿌리던 날이었다. 음식점 출입문이 열리더니 여덟 살쯤 되어보이는 여자아이가 어른의 손을 이끌고 느릿느릿 안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의 너절한 행색은 한 눈에도 걸인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봐요!! 아직 개시도 못했으니까 다음에 와요!" 아이는 아무 말없이 앞못보는 남자의 손을 이끌고 식당 중앙으로 천천히 들어왔다. 나는 그때서야 그들이 음식을 먹으러 왔다는 것을 알았다. "저어… 아저씨! 순대국 두 그릇만 주세요" "응 알았다. 근데 얘야 이리좀 와 볼래" 계산대에 앉아있던 나는 손짓을 하며 아이를 불렀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음식을 팔 수가 없구나. 거긴 예약손님들이 앉을 자리라서 말야…." 나는 그냥 빨리 내보내고 싶은 마음에 거짓말을 하며 아이에게 눈짓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주눅든 아이는 내말에 금방 시무룩해졌다. "아저씨 빨리 먹고 갈께요. 오늘이 우리 아빠 생일이거든요." 아이는 비에 젖어 눅눅해진 천원짜리 몇장과 한주먹의 동전을 꺼내보였다. 나는 순간 가슴이 멍해져서 "응 그래 알았다, 그럼 빨리 먹고 가야한다"하고는 얼른 순대국 두그릇을 내놓았다. 아이가 천천히 아버지의 그릇을 저어보더니 "아빠 제가 소금 넣어드릴께요" 하고는 소금통 대신 자신의 국밥그릇에 있는 순대며 고기들을 떠서 앞못보는 아빠의 그릇에 넣고 있었다. 그리곤 "아빠 이제 됐어요. 어서 드세요. 근데 아저씨가 우리 빨리 먹고 가야 한댔으니까. 어서 밥 뜨세요. 제가 김치 올려드릴께요." 하는 게 아닌가. 수저를 들고 있던 남자의 눈에는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를 이슬이 투명하게 맺혀 있었고 ‘너도 어서 먹어’하며 숟가락을 드는 손은 비를 맞아 그런지 몹시 떨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순간 말할 수 없는 비애와 자신에 대한 혐오로 가슴이 아려왔다. 그리고 ‘어떻해 저 아이의 마음을 다치지 않고 돈을 그냥 줘서보내나 하는 것으로 두 사람이 순대국밥을 다 먹을 때까지 오랫동안 고민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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