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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전기가 또 나가네!” 검은 얼굴, 검은 눈동자의 사람들이 까만 어둠 속에서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전력사정이 안 좋은 방글라데시에서는 수업 도중에 전기가 나가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다. 처음 컴퓨터 교육을 하고 있는데 전기가 나갔을 때는 참 난감했다. 덥고, 말은 통하지 않고, 언제 전기가 들어올지도 모르는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짜증이 났다.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라고 할까’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는데 주민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 어둠 속에서 가만가만 웃고, 애기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아이에게 젖을 물리며 꿈결처럼 조용히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자 주위가 조금 밝아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그냥 책상에 앉아 있다 무심코 앞을 보는데, 순간 나도 모르게 숨이 턱 막혔다. 가만히 나만을 바라보고 있던 그 수많은 눈빛. 검은 얼굴, 검은 눈동자 속에 반짝이던 그 많은 눈빛에 그만 현기증이 났다. 뭘 더 배우겠다고, 배운다고 얼마나 큰 희망이 될 거라고…. 방글라데시로 자원봉사를 신청한 것은 순전히 현실 도피였다. 대학은 졸업했지만 원하는 직장을 얻지 못했고, 투 잡스로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를 해봤지만 통 돈이 모이질 않았다. 그렇다고 서른이 다된 여자가 언제까지 부모에게 손을 내밀 수가 없어 조그만 원룸을 얻어 독립하고 나니 사는 게 더욱 빠듯했다. 뛰어난 외모도, 남 안 가진 기술도, 엄청난 학벌도 없는 한국의 보통 여성인 나는 점차 사는 게 자신 없어졌고, 모든 일이 시시해졌다. 더구나 5년을 사귀었던 남자친구가 행정고시를 패스한 후 철밥통 직업을 가진 여성과 결혼하며 나를 차버리자 내 우울증은 극에 달했다. 정말 죽고싶다는 생각이 그때 들었지만 뼈 빠지게 학비 대주신 부모님께 못할 짓이라 차마 실행하지 못한 채, 부모님께는 해외근무라고 속이곤 도망치듯 검은 대륙으로 와버렸다. 그러나 자학의 심정으로 날아온 다음 날부터 후회는 계속됐다. 밤마다 따라다니는 모기, 도저히 넘어가지 않는 먹거리, 그리고 적응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 그러나 그날 밤, 그 검고 뜨거웠던 밤. 나를 바라보던 그 수 많은 눈빛들의 손을 잡고 달빛으로 나갔다. 그리고 강강수월래 하듯 손에 손을 잡고 달빛을 돌며 목청껏 노래를 부르게 했다. 여인들은 처음엔 어색한 듯 어떻게 할 줄을 몰라 망설이다 곧 행복한 웃음을 흘리며 동화됐고, 엄마를 뒤따르던 아이들은 멋모르고 뛰다 넘어지기를 몇 번, 재밌어 죽겠다는 듯 영적인 노래를 불렀다. 검은 창공을 가르며 내 영혼을 울리던 그 원시의 노래, 아이들의 높은 웃음소리…. 컴퓨터의 성능이래야 겨우 386정도. 우리나라에선 쓰지도 않는 구형이다. 더구나 겨우 워드정도 익히는데도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그래도 그것을 배우겠다고 하루 종일 노동에 시달린 주민들이 둘 셋씩 되는 아이들을 업고, 안고 걸리며 빠짐없이 교육장으로 모여드는 곳. 이곳에서 1년을 강사로 지냈다. 이제는 도마뱀도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도 익숙하다. 돌아오는 비행기는 온통 눈물에 젖어 있었다. 아이들이 건네준 작은 엽서 한 장에 나는 시차를 느낄 새도 없었다.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비록 돈은 벌지 못했고, 또다시 맨땅에 헤딩하는 난들이 계속될 지라도 이제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할 일이 너무 많다는 사실에 고르는 즐거움까지 덤으로 얻었다. 역시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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