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글셋방에서 신혼살림을 꾸렸던 우리 부부는 달동네 방 한 칸으로도 행복했다. 지금부터 한 30년 전 일이니 그때는 모두가 힘들게 살 던 때라 사글셋방에서 새살림을 시작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런데 막상 혼인을 하고나니 앞을 못 보시는 시어머니가 단칸방인 신혼집에 와 함께 살길 원하셨다. 막내아들 곁에 계시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불편한 심사를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한 방에서 지내기가 불편했다. 내심 표현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느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시던 시어머니는 그리 오래 머물지 않고 곧 형님 댁으로 거처를 옮겼다. 얼마 뒤 형편이 나아져 우리 식구는 조그만 연립주택으로 이사했다. 웬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 시어머니를 다시 모셔와 함께 살았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연립이 답답하다며 한옥으로 이사하자고 조르셨다. 결국 남편과 상의한 끝에 허름한 한옥으로 다시 이사했다. 조그만 마당과 장독대가 있어 시어머니는 좋아하셨지만 나는 화장실이 재래식인 한옥이 몹시 춥고 불편했다. 겨울이면 시간 맞춰 연탄을 갈러 일어나야 하고, 날씨는 또 얼마나 추운지 이불을 꼭꼭 덮고 아랫목에 누워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아이가 속옷에 변이 묻도록 참다가 유치원에서 화장실을 가곤 했다. 그러 던 어느 날, 지갑에서 돈이 조금씩 없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이상하다 싶었는데 집안 청소를 하다가 방구석에 숨겨진 돈 7만원을 발견했다. 범인은 바로 어린 아들이었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아이를 혼내려고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뜻밖에도 아이는 울먹이며 “아파트로 이사 갈 돈 모으려고 그랬어요.” 하고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시어머니는 그 한옥에서 몇 년을 더 살다 어느 날 평화롭게 눈을 감으셨다. 아들과 편리한 아파트로 이사 가고싶은 마음을 꾹 참고 견딘 세월은 정말 길게만 느껴졌다. 세월은 쏜살같이 흘러 그때 아이와 함께 살고싶던 아파트를 장만해 이사를 했지만 정작 아이는 커서 함께 살지 못하고 분가했고, 이제 홀로 아파트에 거주하는 삶이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시어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돈이란 참 좋은 거지. 열심히 일해서 꼭 재산을 모아야 한다. 그러나 그 돈에 매달려 돈! 돈! 하고 살지는 말아라. 돈이 좋긴 하지만 이런 말도 있단다. ‘돈이 있으면 침대는 살 수 있지만 잠은 살 수 없고/ 돈이 있으면 책은 살 수 있지만 두뇌는 살 수 없고/ 돈이 있으면 음식은 살 수 있지만 입맛은 살 수 없고/ 돈이 있으면 장식품은 살 수 있지만 미는 살 수 없고/ 돈이 있으면 약은 살 수 있지만 건강은 살 수 없고/ 돈이 있으면 사치스러운 생활은 살 수 있지만 교양은 살 수 없고/ 돈이 있으면 유흥은 살 수 있지만 행복은 살 수 없고/ 돈이 있으면 십자가는 살 수 있지만 구세주는 불가능하고 /돈이 있으면 종교의 사원은 지을 수 있지만 하늘나라는 불가능하단다.” 노인학교에서 배운 내용이라고 들려주신 얘기다. 그때는 그냥 웃고 말았는데, 내가 나이가 드니 웬지 그 말들이 아릿하게 가슴을 파고 든다. 정말 나이듦은 속일 수 없나 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