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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이들은 신혼을 사글세방에서 시작하라고 하면 ‘결혼 안해!’ 하는 말이 냉큼 돌아온다. 현명한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생의 깊은 맛은 느끼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젊은 시절에는 신혼을 사글셋방에서 시작하는 예가 많았다. 물론 돈있는 부모를 만나 턱하니 내 집을 장만해 들어가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서민들은 그렇지 못했다. 나 역시도 신혼을 작은 사글세 단칸방에서 시작했다. 남편을 사랑했기에 달동네 방 한 칸으로도 나는 행복했다. 그런데 막상 혼인을 하고나니 시력이 나빠 거의 앞을 못보시는 시어머니가 신혼집에 와 함께 살길 원하셨다. 유난히 막내아들에 대한 애정이 깊어 그러셨지만 당연히 나는 불편했다. 내심 표현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느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시던 시어머니는 그리 오래 머물지않고 곧 형님 댁으로 거처를 옮겼다. 얼마 뒤 형편이 나아져 우리 식구는 조그만 연립주택으로 이사했다. 웬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 시어머니를 모셔왔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연립이 답답하다며 한옥으로 이사하자고 졸랐다. 결국 남편과 상의한 끝에 허름한 한옥으로 다시 이사했다. 조그만 마당과 장독대가 있어 시어머니는 좋아하셨지만 나는 화장실이 재래식인 한옥이 몹시 춥고 불편했다. 겨울이면 시간 맞춰 연탄을 갈러 일어나야 하고, 날씨는 또 얼마나 추운지 이불을 꼭꼭 덮고 아랫목에 누워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아이가 속옷에 변이 묻도록 참다가 유치원에서 화장실을 가곤 했다. 그러 던 어느 날, 지갑에서 돈이 조금씩 없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이상하다 싶었는데 집안 청소를 하다가 방구석에 숨겨진 돈 7만원을 발견했다. 범인은 바로 어린 아들이었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아이를 혼내기 위해 왜 그랬냐고 다그쳤더니 뜻밖에도 아이는 울먹이며 “아파트로 이사 갈 돈 모으려고 그랬어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철없는 아이의 말이 비수처럼 가슴을 찔렀지만 시어머니께 내색하진 않았다. 시어머니는 그런 내 심정을 아셨는지 그 한옥에서 그리 오래 살지 않고 어느 날 눈을 감으셨다. 아들과 편리한 아파트로 이사가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견딘 시간은 정말 길게만 느껴졌다. 세월은 쏜살같이 흘러 그때 아이와 함께 살고싶던 아파트를 장만해 이사를 했지만 정작 아이는 커서 함께 살지 못하고 어느새 분가했다. 이제 나는 홀로 그 편리한 아파트에 거주하며 살지만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시어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돈이란 참 좋은 거지. 열심히 일해서 꼭 재산을 모아야 한다. 그러나 그 돈에 매달려 돈! 돈! 하고 살지는 말아라. 돈이 좋긴 하지만 모든 것을 다 해결해주는 건 아니란다.” 그러면서 노인대학에서 배웠다는 점자 글을 읽어주셨다. “돈이 있으면 침대는 살 수 있지만 잠은 살 수 없고/ 책은 살 수 있지만 두뇌는 살 수 없고/음식은 살 수 있지만 입맛은 살 수 없고/ 장식품은 살 수 있지만 미는 살 수 없고/ 약은 살 수 있지만 건강은 살 수 없고/ 사치스러운 생활은 살 수 있지만 교양은 살 수 없고/ 종교의 사원은 지을 수 있지만 하늘나라는 불가능하단다….” 그때는 그냥 웃고 말았는데, 내가 나이가 드니 웬지 그 말들이 아릿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정말 나이 듦은 속일 수 없나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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